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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54] 압살롬의 죽음 1(사무엘하 18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54] 압살롬의 죽음 1(사무엘하 18장)

En Hakkore 2024. 3. 4. 13:12

승리

"이에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삼하 18:6).

이 진술은 주석가들에게 문젯거리를 제공해 왔다. 어떤 이들은 불손하게도 성경을 기록한 자가 실수를 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우리가 보았듯이, 다윗과 압살롬 모두 요단강을 건넜고, 따라서 지금 그들은 모두 "길르앗 땅"에 있었다(삼하 17:22, 26).

길르앗은 요단강 동편에 있었다. 그리고 에브라임 수풀은 요단강 서편에 있었다. 그렇기에 어떤 회의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이 싸움이 에브라임 수풀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전하는 자가 지형을 착각했던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런 주장은 성스러운 역사에 대한 비판자들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성경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사사기 12장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거기에서 에브라임 사람들이 길르앗 땅에 있는 입다를 공격했던 사건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입다가 암몬을 성공적으로 공격할 때 자기들을 초대하지 않은 것을 자기들에 대한 모독으로 여겼다.

입다는 잔뜩 화가 난 그들을 달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로 인해 "요단 강 나루턱"(삿 12:5)에서 싸움이 벌어졌고, 그때 그 싸움에서 에브라임 사람들 사만 이천 명이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그런 무서운 학살 사건에 기념비가 빠지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그들의 무덤 곧 그 부족의 피밭에 적절한 이름이 "에브라임의 수풀" 외에 달리 뭐가 있겠는가! 그것은 길르앗 땅에 있었다!

잠시 전투가 격렬했으나 곧 결과가 나왔다. 반역자들이 크게 패했다.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패하매 그 날 그곳에서 전사자가 많아 이만 명에 이르렀고 그 땅에서 사면으로 퍼져 싸웠으므로 그 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삼하 18:7-8).

"이제 그들은 자기들이 적법한 군주에 맞서 일으켰던 반역, 그의 선한 통치를 불편하게 여겼던 것, 그토록 훌륭한 통치자에게 비열하게 배은망덕했던 것 때문에 정당하게 고통을 당했다. 그리고 입맞춤과 포옹으로 자기들을 파멸 속으로 몰아넣은 왕위 찬탈자를 위해 무기를 든 결과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들이 그에게서 얻으리라고 기대했던 보상과 승진과 좋은 날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제 그들은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맞서고 그분의 손에 깨뜨리려 했던 일의 결과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Matthew Henry).

이제 여호와께서 어느 편에 계신지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났다. 반역자 편에 속한 자들은 모두 혼란과 파멸에 빠졌다. 기름 부음 받은 눈을 가진 이들은 이보다 앞선 사건의 경우에서처럼 여기에서도 분명하게 하나님의 손길을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앞선 사건은 기브온에서 있었다(수 10:11). 거기에서는 "큰 우박 덩이"가 칼보다 더 많은 자를 삼켰고, 여기에서는 "수풀"이 칼보다 더 많은 자를 삼켰다(삼하 18:8b의 KJV 원문은 "그 날에 수풀이 삼킨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and the wood devoured more people that day than the sword devoured]로 되어 있다 -역주}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상세한 설명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그 숲에 만연해 있던 것이 구덩이었는지, 늪이었는지, 아니면 야생 동물이었는지 추측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우리로서는 그들과 맞서 싸우신 분이 하나님 자신이셨다는 사실로 만족해야 한다.🫰

그분은 그들보다 훨씬 적은 병력으로 그들을 정복하셨고, 그로 인해 그들은 칼을 피해 달아나던 중에 그분의 파괴적인 섭리의 힘에 의해 쫓겼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그런 대규모 학살은, 그들 주변의 적들을 고려한다면, 다윗의 왕국에 임한 심각한 재앙이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압살롬

그러는 동안 그 반역의 주모자는 어찌되었는가? 아, 그는 별도로 처리되었다. 그것도 하나님의 손길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 주는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그는 공개적인 볼거리가 되었다.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삼하 18:9).

이 나뭇가지는 마치 거인의 손처럼 압살롬의 목 혹은 그의 무성한 머리칼(삼하 14:26)을 굳게 잡아챘다. 그리고 그가 탔던 짐승은 마치 무거운 짐을 벗어버려 기쁘다는 듯 그를 그곳에 버려둔 채 달려 나갔다. 압살롬은 나뭇가지에 매달렸다. 그는 하늘과 땅 어디에도 적합하지 않은 자처럼 허공에 매달렸다.

이 놀라운 섭리를 보라.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갈 3:13)! 그는 수치스러운 물건처럼 공포에 질린 채 그곳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자기를 구원할 수도, 달아날 수도, 싸울 수도 없었다. 그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런 무서운 상태로 남아 공포 속에서 자기에게 합당한 운명을 기다려야 했다.

그에게는 자신의 죄에 대해 생각하고 하나님과 평화를 이룰 충분한 기회가 제공되었다. 그러나, 아,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한, 그의 편에서 일어난 회개는 없었다. 성경에는 그가 자신이 살기에도 혹은 죽기에도 부적합하다고 느꼈다고 암시하는 아무런 표현도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세벨에 관해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계 2:21)라고 선포하셨던 것처럼, 압살롬의 생명 역시 몇 시간 동안 연장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소환되기 전에 그분께 자신의 무서운 죄를 고백했다는 그 어떤 암시도 얻지 못한다.

아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하나님을 위한 자리가 아예 없었다. 그는 살았을 때처럼 죽을 때도 여전히 반항적이고 회개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의 아버지의 사랑과 눈물과 기도는 쓸모없었다. 압살롬의 경우는 우리가 성경 안에서 만날 수 있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관한 가장 어두운 모습들 중 하나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압살롬의 모습보다 더 우울하고 비극적인 장면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동료들에게 버림받았다. 그들은 하나 같이 그를 방치했다.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그의 죄의 잔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자책에 빠졌다. 비록 완전히 냉혹하고 파렴치한 자였으나 그는 이제 가장 어두운 생각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그는 누군가 다가와서 그의 비참한 삶을 끝내줄 때까지 여러 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다. 이것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을 향한 말할 수 없을 만큼 엄중한 교훈이다! 압살롬의 끔찍한 최후는 부모에게 반역하는 자들에 대한 여호와의 혐오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잠 15:5)와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20:20)는 미련한 자라고 말씀한다. 또한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30:17)고 말씀한다.

그의 시간은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일러 이르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나이다 하니"(삼하 18:10). 그 사람은 압살롬이 비극적인 상황을 보았으나 그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고 그 사실을 요압에게 보고했다.

"요압이 그 알린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하는지라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젊은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삼하 18:11-12).

반역하는 자들이 많은 오늘날 이 사람이 자신의 주군에게 순종하는 모습은 환영할 만한 대조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장을 여기에서 끝내야 한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