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The Life of David 259] 과도한 슬픔 1(사무엘하 18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59] 과도한 슬픔 1(사무엘하 18장)

En Hakkore 2024. 3. 4. 13:17

인간은 영뿐 아니라 마음도 소유하고 있는 복합적인 존재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성적인 원리뿐 아니라 감정적인 본성도 주셨다. 어떤 사람 안에서는 열정이 보다 강하게 나타나고, 다른 사람 안에서는 지적 능력이 보다 우세하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우리는 그것들 각각의 역할과 상호 작용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감정이 우리를 압도하게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우리는 명확한 사고와 신중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의 감정이 완전히 매말라서도 안 된다. 그럴 경우 우리는 딱딱한 냉소주의자나 차가운 지적 기계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쾌락주의와 금욕주의 사이에 적절한 타협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계속적인 조심과 자기 훈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과도한 열정에 정복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정복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적절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금욕주의 혹은 우리의 감정의 완전한 억압은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그 어떤 지지도 얻지 못한다. 성경의 저자가 우리에게 감정적인 본성을 주신 분이심을 감안한다면,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작품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에 실려 있는 완전한 인간(the Perfect Man)이셨던 분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그분이 나사로의 무덤 곁에서 우시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견하며 탄식하셨던 이야기를 읽는다.

안면(顔面)에 움직이는 근육들을 만드신 분은 그 근육들 각각이 그것들에 적합할 때에 사용되게 하셨다. 육체적으로는 건강한 땀을 흘릴 수 없는 이들은 무더운 날씨에 자유롭게 땀을 흘리는 이들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당한다. 또 큰 슬픔을 당했을 때 울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철컥하고 닫히는 위험을 초래한다.

웃음과 눈물은 자연의 안전밸브다. 그것들은 마치 뇌우(雷雨)가 대기의 무거운 전기적 성격을 해소시켜 주듯이 과도한 긴장을 완화시켜 준다.

과도한 애정의 문제

그럼에도 우리의 감정은 훈련되고 제어되어야 한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잠 4:23). 그런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열정과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다. 즉 분노를 제어하고, 성마름을 가라앉히고, 탐욕을 통제하고, 슬픔과 기쁨을 조율하는 것이다.

우리가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것들 중 하나는 "과도한 애정"(골 3:5, inordinate sffection, KJV-역주)이다. 거기에는 경건하지 않은 욕망뿐 아니라 적법한 것들에 대한 과도한 갈망까지 포함된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그런 사랑이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영적인 것에 대한 사랑에 의해 제어되고 그것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외적인 삶뿐 아니라 내적인 삶에도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결혼식이나 아기가 태어났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반면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슬퍼하며 우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적절하게 제어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 2:11)라는 명령을 받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소망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말라"(살전 4:13)는 권면을 받고 있다. 분명히 이것은 복잡한 주제이지만, 또한 실제적 중요상을 갖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절제되지 않은 슬픔은 절제되지 않은 기쁨만큼이나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는 기쁨을 초래하는 일에서만큼이나 슬픔을 초래하는 일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보아야 한다. 만약 그분이 주시는 분이라면, 그분은 또한 거둬가는 분이시기도 하다.

우리의 마음이 이 사실을 인식하면 할수록, 우리는 통제되지 않은 열정에 굴복해 적절한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과도한 슬픔에 주의하신다는 사실은 사울을 위해 울었던 서무엘의 경우를 통해 잘 드러난다. 사무엘은 우리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밝은 인물들 중 하나다. 그럼에도 그 역시 이 점에서 실패했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왕직을 빼앗기로 작정하셨다는 생각은 그 선지자의 마음을 크게 괴롭혔다. 그리고 그는 밤새도록 사울을 위해 부르짖었다(삼상 15:11).

그는 그렇게 계속 탄식하다가 하늘의 비난을 듣고서야 눈물을 그쳤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삼상 16:1a).

만약 그런 슬픔이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었다면, 분명히 그분은 그런 이유로 그를 비난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교훈과 경고가 되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