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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60] 과도한 슬픔 1(사무엘하 18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60] 과도한 슬픔 1(사무엘하 18장)

En Hakkore 2024. 3. 4. 13:18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

대개 비상시는 우리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때가 된다. 한 인물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은 평범한 일상생활에서가 아니라 위기의 때다. 이것은 위기가 그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위기가 그 사람이 받은 유익한 훈련이나 그가 그런 훈련을 받지 못해 지니고 있는 약점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가 어떤 특별한 경험 때문에 크게 동요할 때 그에게 자신을 다스리라고 명령하는 것은 거의 혹은 전혀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매일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익히지 않은 사람은 특별한 상황하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 "특별한 열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내가 어떻게 과도한 기쁨이나 슬픔을 피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다. 사람은 자신의 성향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그가 그런 목적을 위해 수고한다면, 그는 그것을 크게 누그러뜨릴 수 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여기에서 내가 살피려 하는 것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문제다. 즉 그런 필요를 인식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작동시켜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고자 하는 의지에 대한 것이다. 과도한 슬픔은 과도한 애정의 결과다. 따라서 우리의 애정을 면밀히 살피고 그것을 초래한 이유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가 삶의 위기에서 우리 자신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우리는 매일 자신을 훈련하고 사소한 일들에서 우리의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작은 가지가 굽어 있으면, 큰 가지도 굽는다. 우리가 자신의 열정이 마구 내달리도록 내버려 두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만큼 우리는 그것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진다.

아이에게 자신을 통제하고 모든 일에서 절제하도록 훈련을 시키는 부모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여러분은 우리 앞에 놓인 이야기의 실제적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들에게 닥친 슬픈 일이나 재앙 때문에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리는가? 그리고 이것은 어째서 그런 것인가? 그것은 그들이 자기를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즉시 혹은 산발적인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매일의 그리고 엄격한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당신의 갈망에 주의하고 그것들이 금지된 것들을 향해 분출할 때 즉시 그것들을 제어하는 습관을 지니라.

자신의 감정을 살피고 그런 감정들이 나타난 이유를 찾아보라. 그것들이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에든 너무 깊이 달라붙지 않게 조심하라. 당신이 무언가를 크게 높이면 높일수록 그것을 잃었을 때 더 날카로운 고통을 느끼게 되리라는 것을 기억하라.

부드럽고 덤덤한 성향을 개발하기 위해 애쓰라. 그리고 감정이 격해질 경우, 그런 사소한 것은 당신이 그것 때문에 당황해야 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기라.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전 6:12).

우리 앞에 제시된 내용이 얼마나 적절한지는 우리가 다시 다윗의 이야기를 살필 때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앞장에서 우리는 다윗이 군사들을 싸움터로 내보내면서 자신의 장수들에게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니 대우하라"(삼하 18:5)고 명령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항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다윗은 그 싸움의 결과에 대해 아무런 염려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싸움의 결과가 자신에게 불리한 것이 되리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았다. 앞 장에서 지적했듯이, 이 시기에 쓰인 시편 42편과 43편은 다윗이 그의 낙심과 의심을 극복했고, 다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둘째,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에 빠진 아비의 모습을 발견한다. 다윗은 압살롬을 "젊은 압살롬"이라고 부를 뿐 아니라(사실 당시에 그는 이미 적어도 네 명의 자녀들을 두고 있었다. 14:27). 자신의 장수들에게 적절하지 않은 명령을 내림으로써 자신의 감정이 의(義)의 요구를 앞서게 만들었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