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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7] 창조와 회복 1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7] 창조와 회복 1

En Hakkore 2024. 3. 13. 11:00

3.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2 하반절).

여기에서 소망이 동터 오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폐허가 된 최초의 땅을 버리지 않으셨다. 설령 하나님이 버리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의로운 심판 아래 놓으신 것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쓸 까닭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제 황량한 폐허가 된 것에 대해 그가 더 이상 관심을 가질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나 바로 여기에 주권적인 긍휼이 개입해 들어왔다. 그는 혼돈과 공허를 향한 은혜로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는 그것을 다시 세우며, 회복시키고자 계획하셨다.

이러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최초의 것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었다. 거기에 신적 행동 즉 하나님의 영 편에서의 움직임이 있었으며, 바로 이것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어떻게 땅이 스스로를 다시 세울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아래 떨어진 것이 스스로 축복의 자리로 옮겨 놓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어둠이 스스로를 생명으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폐허가 된 창조세계는 스스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만일 회복과 새 창조가 있었다면, 필연적으로 신적 능력이 개입했음에 틀림없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셔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적인 영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폐허가 된 최초의 땅과 마찬가지로, 타락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관심을 요구할 수 있는 어떤 권리도 없었다. 아담이 창조주에 대항하여 반역을 행했을 때, 그는 하나님의 가차 없는 심판 외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그에게 약간의 관심이라도 보이셨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주권적인 긍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설령 하나님이 사람을 멸망가운데 그대로 내버려 둔다 하더라도, 그것이 도대체 무슨 놀랄 만한 일이란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향한 은혜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난파되고 폐허가 된 타락한 인성(人性)으로부터, 하나님은 "새 창조"를 행하고자 계획하셨다. 죄로 말미암은 사망으로부터, 지금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모든 사람들을 부활의 땅으로 데려가고 계신다.

이 일을 이루는 첫 번째 것은 성령의 행동이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폐허가 된 땅과 마찬가지로 타락한 인간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폐허가 된 땅이 스스로를  깊음으로부터 솟아오르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인은 스스로를 거듭나게 할 수 없다. 물질적인 창조세계의 회복과 마찬가지로, 새 창조는 하나님 자신이 이루셔야만 한다.

4.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3절).

먼저 성령의 활동이 있었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본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가 열 번 반복되는 것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아무 말씀 없이도 땅을 다시 개조하시고 새롭게 하실 수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하는 대신 하나님은 처음부터 자신의 계획과 목적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기를 기뻐하셨다. 하나님이 첫 번째로 말씀하신 것은 "빛이 있으라" 였으며, 그 결과는 "빛이 있었고" 였다. 이와 같이 빛은 말씀 안에서 왔으며, 말씀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우리는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을 읽는다(4절).

이것은 새 창조의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성령의 활동과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役事) - 이 두가지는 서로 불가분적으로 결합된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new creation), 가 되는 것은 이 두 가지로 말미암는다. 그리고 그 일을 향한 첫 발자국은 어둠 속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마음의 눈이 멀었으며, 그의 총명이 어두워졌다. 스스로에게 남겨질 때, 사람은 자신의 두려운 상태 즉 자신이 처해 있는 정죄의 상태와 자신이 서 있는 위험을 깨달을 수 없다. 또 그는 자신에게 구주가 절박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요컨대 그는 영적으로 총체적인 어둠 가운데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성이든, 감성이든, 의지적으로든 이러한 두려운 어둠을 쫓아낼 수 없다. 그러나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라고 기록된 것처럼, 성령에 의해 적용된 말씀을 통해 빛이 죄인에게 임한다(시 19:130). 💕

그리고 바로 이것이 사람의 영혼 위에 하나님의 역사(役事)의 첫 발자국을 찍는다. 창세기 1장의 빛이 폐허가 된 땅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처럼, 사람의 마음 안으로 들어온 하나님의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부패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Arthur W. Pink 창세기강해 p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