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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5] 창조와 회복 1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5] 창조와 회복 1

En Hakkore 2024. 3. 13. 10:58

창세기 1장은 얼마나 놀랍도록 간결한가! 최초로 천지가 창조된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단 한 절로 충분하다(1절). 또 폐허가 된 땅의 무시무시한 혼돈을 이야기 하기 위해 또 하나의 절이 할당된 것이 전부다(2절). 또 채 서른 개도 되지 않은 절(節)들로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든" 6일 동안의 역사(役事)를 이야기한다.

이 세상이 배출한 모든 문학가들과 역사가들과 시인들과 철학자들의 모든 재주를 다 합친다 하더라도 창세기 1장과 견줄만한 작품을 결코 고안할 수 없을 것이다. 주제의 심원(深遠)함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는 얼마나 단순한가! 범위의 광대함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은 얼마나 간결한가!

과학적인 정확성에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용어는 전혀 사용되지 않은 것을 보라. 이 세상에 창세기 1장에 맞설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문학의 전체 영역 속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그것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스스로 선다.

간결함이 지혜의 핵심적인 요소라면, 창세기 1장의 간결함은 그것에 영감(靈感)을 불어넣은 자의 신적 지혜를 증명한다.♡ 그것을 과학자들이 정리한 과학의 공식들과 비교해 보라. 그것을 시인들이 쓴 위대한 문학작품들과 비교해 보라. 그것을 옛 사람들이 허무맹랑한 천지개벽론이나 이교도들의 허탄한 신화들과 비교해 보라.

그러면 창조의 회복에 관한 여기의 신적 이야기의 독특성이 단번에 두드러질 것이다. 창세기 1장의 모든 행(行)속에는 신성(神性)의 필적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6일간의 역사(役事)의 세세한 것들은 모두 다루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읽는 자들은 그 안에서 하나님이 진행하신 방식의 질서정연함, 그가 자신의 일을 이루심에 있어서의 쉬움, 창조된 것들의 탁월함, 그리고 이야기의 단순함 등을 즉시로 느끼게 될 것이다.

혼돈을 의미하는 "카오스"로부터 질서와 조화와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코스모스"가 나오고, 물로부터 땅이 솟아오르고, 폐허와 어둠과 죽음의 장면이 빛과 생명과 비옥함의 장면으로 바뀌고 마침내 "모든 것이 심히 좋았더라"라는 선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첫 번째 "열 개의 신적 명령"(Decalogue)을 보게 되고, 계속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니라"가 열 번 반복되는 것을 읽게 된다(3, 6, 9, 11, 14, 14, 20, 24, 26, 30절). 이것은 창조의 십계명이라고 명명될 수 있을 것이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창세기 1장 1절은 7개의 단어로 되어 있으며, 그것은 모두 28개의 알파벳으로 구성되어 있다. 28은 7에 4를 곱한 숫자이다. 7은 완전을 나타내는 숫자이며 4는 창조를 나타내는 숫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초의 창조가 완전했음을 배운다. 💕

또 땅을 회복시키는 하나님이 사역이 일곱 단계로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주목할 수 있다. 첫째로 성령의 활동(1:2), 둘째로 빛이 있으라 부르심(1:3), 셋째로 궁창을 만드심(1:6-9), 넷째로 땅을 각종 식물로 옷 입히심(1:11), 다섯째로 천체를 만드시고 배치하심(1:14-18), 여섯째로 물을 생물로 가득 채우심(20-21절), 일곱째로 땅을 생물로 가득 채우심(24절).

하나님의 사역의 완전함은 여기에서 "좋았더라"라는 단어가 일곱 번 등장하는 것에서 또 다시 나타난다(7, 16,26, 31; 2:2, 3). 또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하늘"이라는 단어가 일곱 번 나오는 것을 주목할 수 있다(1, 8, 9, 14, 15, 17, 20). 또 성경의 첫 단락(창 1:1-2:4)에 "하나님" 자신이 35회 나오는데, 그것은 7에다가 5를 곱한 숫자이다. 이와 같이 여기에서 하나님이 행하시고 만드신 모든 것에 완전의 표가 찍혀 있다.

창세기 1장의 문자적인 의미로부터 돌이켜, 이제 그것의 상징적인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옛 창조를 재구성함에 있어 하나님이 따른 순서는 새 창조와 관련하여 행해진 순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리고 전자는 매우 놀랄 만한 방식으로 후자의 그림자가 된다. 폐허가 된 땅을 회복시키는 회복의 역사(歷史)는 그리스도안에서의 신자(信者)의 영적 역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옛 세상과 관련하여 일어난 것은 거듭난 사람 안에서 자신의 짝을 발견한다. 이제 구체적으로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절)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최초의 창조의 본래 상태는 2절이 묘사하는 상태와 크게 달랐다. 창조주의 손에 의해 지으짐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은 틀림없이 최고로 온전하며 아름다운 환경을 제공했을 것이다. 거기에 "새벽 별들"의 화음을 깨뜨리는 소통의 신음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욥 38:7).

거기에 창조주의 작품의 완전함을 망가뜨리는 썩음의 벌레는 전혀 없었다. 거기에 어두운 분위기를 만드는 사망의 그늘은 전혀 없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통치하셨으며, 그와 맞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심히 좋았다.

세상 역사(歷史)의 처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처음 창조한 사람의 본래 상태는 이후의 타락으로 말미암는 상태와 크게 달랐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졌으며, 돕는 배필과 기쁨의 동산과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받았으며,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는 복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심히 좋았더라"라는 선언에 포함되었다.

아담은 자신의 마음이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다. 그에게 어떤 죄의 유전(遺傳)도 없었으며 그 주위에 어떤 사망의 표적도 없었다. 거기에 돕는 베필과 함께 그리고 창조주와 교제하는 가운데, 그를 행복하고 만족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 있었다.♡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