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창세기 강해 10] 창세기 1장 속에 있는 그리스도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10] 창세기 1장 속에 있는 그리스도

En Hakkore 2024. 3. 13. 11:01

1. 첫째 날의 역사 속에 신적 성육신이 상징적으로 제시된다.

타락한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하고자 한다면, 어떤 일이 행해져야만 하는가? 하나님과 사람을 나누는 무한한 간격에 어떻게 다리가 놓일 수 있나? 어떤 천상의 사다리를 땅에 내려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오직 하나의 답변만이 가능할 수 있다.

인류 구원을 위한 첫 단계는 신성(神性)의 성육신이어야만 한다. 바로 이것이 출발점이 되어야만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야만 하며 하나님 자신이 죄 가운데 인류가 떨어진 바로 그 구덩이로 내려오셔야만 한다. 그래야만 인류가 진흙과 흙탕물이 가득한 곳으로부터 천상의 아름다운 장소로 옮겨질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종의 형상을 취하고 사람의 모양을 입으셔야만 한다. 💕

이와 같이 첫째 날의 역사(役事)는 구속사역에 있어서의 첫 단계 즉 신적 구속자의 성육신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여기에서 다섯 가지를 주목하라.

첫째로, 거기에 성령의 활동이 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히브리어로는 "품으시니라"). 그리스도의 성육신 안에 있는 순서도 이와 같았다. 구주의 어머니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게 된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둘째로, 말씀이 마치 빛처럼 선포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3절). 마리아가 아들을 낳았을 때, 주의 영광이 베들레헴의 목자들 주위를 비추었다.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눅 2:9). 또 시므온은 성전에서 거룩한 아기를 보고 성령에 감동되어 이렇게 말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 2:30-32).

셋째로, 그 빛은 하나님에 의해 인정된다.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4 상반절). 우리는 지금 이러한 언급의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 길게 다룰 수 없지만, 여기에서 "좋았더라"(good)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가 또한 전도서에서 "아름답게"(beautiful)로 번역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전 3:11).

그 빛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나 좋고 아름다웠다. 이것은 성육신하신 우리 주님에게 얼마나 분명하게 적용되는가! 그가 세상에 오셨을 때 우리는 그와 관련하여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라는 말씀을 듣는다(눅 2:52).

또 그와 관련하여 아버지가 하신 첫 번째 말씀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였다(마 3:17). 그렇다.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그 빛은 좋고 아름다웠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런 아름다움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심각한 소경인가?

넷째로, 그 빛은 어둠으로부터 분리되었다.

"하나님에 빛과 어둠을 나누사"(4 하반절). 성령께서 상징을 얼마나 즐겨 사용하시는지 보라! 여기에서 성령께서 인자(Son of Man)와 사람의 아들들(son of man) 사이의 무한한 차이에 우리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을 보라! 물론 인자는 그의 무한한 비하(卑下) 가운데 기꺼이 우리의 인성(人性)에 참여하기를 기뻐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부패에는 참여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의 빛은 어둠 즉 타락한 인성으로부터 분리되셨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히 7:26)

다섯째로, 하나님이 그 빛에 이름을 붙여 주셨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5 상반절). 이것은 세상의 빛인 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거룩한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 주는 일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남겨지지 않았다.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사 49:1).

이러한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은 아기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천사를 보내셔서 요셉에게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라고 말씀하셨다.(마 1:21).

Arthur W. Pink 창세기강해 p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