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3/18 (15)
En Hakkore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 곳(곧, 길갈, 19절)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수 4:1-3). 그 열두 돌이 큰 돌들이었다는 것은 그들이 "어깨"에 지고 갔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4:5). 돌을 지고 갈 사람들을 사전에 미리 선정하여(3:12), 그 임무를 미리 준비하도록 했다. 당장 무수한 무리들이 밤을 보낼 수 있도록 적절한 곳에 진을 쳐야 하는 당면 과제를 수행하기에 차질이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진을 친 곳은 후에 길갈이라 불렀는데, 그 곳은 요단 ..
요단 강에서는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들이 강에 놓인 열두 돌과 거기서 취한 열두 돌을 통해 그들 자신이 죽음과 부활을 통과했음을 보았다. 이때에 이스라엘의 역사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전에 여호와의 특별한 백성으로서 그들이 보여 주었던 그 모든 필수적인 특질을 영구히 보존하는 문제는 길갈에서 베푼 새로운 할례와, 유월절을 기념하고 지키는 일, 그리고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칼을 빼들고 나타나는 사건을 다룰 때에(5장) 살펴보게 될 것이다. 아무튼, 위에서 말씀한 대로, 요단 강 도강 사건의 특질들은 홍해에서 일어난 일과는 날카로운 대조를 이룬다. 홍해에서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보이지 않고,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여호와의 진노로 말미암아 수장된 사실이 두드러진다. 반면에, 요단 강 사건에는 가나..
구약 성경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앞부분의 책들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단순히 오래 전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담고 있는 역사적(歷史的) 기록 이상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이것은 참으로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족장들의 삶의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그 속에서 고대의 전기(傳記) 이상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단순히 오래 전의 옛 이야기로만 들으면서 영감(靈感)된 기록 안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제적으로 창세기를 죽은 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창세기는 "생명의 말씀"의 일부이며(빌 2:16),..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기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20:3). 별 생각 없이 읽는 이들에게 이러한 말씀은 매우 상투적인 말처럼 들릴는지 모른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며 읽는 이들은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진리가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보편적이며,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들에 대해 절대적인 통치권을 갖는다.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실 때 쉽게 사람들을 움직여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가 꿈이나 혹은 고통이나 혹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시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해 꿈을 사용하신다. 그리고 그에게 지금 당장 해..
"이스라엘 자녀들의 마음이 어떠한지가 드러나기 위해 광야의 40년 방랑이 필요했다(신 8:2).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 연단의 긴 과정의 한 가지 중요한 목적은 그들이 자신의 약함과 아무것도 아님을 더 깊이 깨닫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9). 스스로의 연약함을 더 깊이 의식할수록,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따라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우리는 그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며, 그의 속죄의 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아직 어린아이의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
앞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스스로를 아브라함에게 "전능자" 로 나타내시면서 그와 함께 아들을 주겠다는 말씀이 포함된 칠중적인 약속을 주신 것을 살펴보았다. 계속해서 18장에서 우리는 당신의 벗과 더불어 풍성한 교제를 나누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식탁에서 음식을 드시며, 그에게 소돔과 관련된 당신의 계획을 알리신다. 그리고 같은 장 끝 부분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중보자로서 나타난다. 이제 우리는 창세기 20장에 도달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슬프면서도 극적인 변화를 목격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여기에서 예전에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시용했던 부끄러운 책략을 또 다시 반복한다. 아내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될 것을 두려워하면서 또 다시 아내를 누이처럼 꾸민 것이다. 그러나 사라는 하나님의 ..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걸어 완전하라"(walk before Me, 한글개역개정판에는 "내 앞에서 행하여" 라고 되어 있음). 우리는 서로 다른 전치사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의 다양한 "걸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네 구절을 주목하고자 한다. 여기 창세기 17:1에서 아브람은 전능한 하나님 "앞에서(before) 걸으라고 명령받는다. 또 신명기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와를 "따라"(after) 걸으라고 훈계한다.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라 걸으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신 13:4). 그런가 하면 창세기는 에녹과 노아에 대해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with) 걸었다고 증언한다(창 5:2..
창세기 17:1로 다시 돌아가자.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여기에서 하나님이 스스로에 대해 계시하신 것은 이때의 정황과 잘 부합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전능자"로 계시하셨다. 모든 능력을 소유한 자 외에는 아무도 이때의 아브람의 필요에 부응할 수 없었다. 그는 지금 99세였으며, 그의 몸은 죽은 자와 같았다. 사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이미 오래 전에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들이 아들을 가질 것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엘 샤다이, 전능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 "전능자"라는 호칭은 악인의 마음에 두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