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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90] 그랄에서의 아브라함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90] 그랄에서의 아브라함

En Hakkore 2024. 3. 18. 11:05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기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20:3).

별 생각 없이 읽는 이들에게 이러한 말씀은 매우 상투적인 말처럼 들릴는지 모른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며 읽는 이들은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진리가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보편적이며,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들에 대해 절대적인 통치권을 갖는다.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실 때 쉽게 사람들을 움직여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가 꿈이나 혹은 고통이나 혹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시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해 꿈을 사용하신다. 그리고 그에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가르치신다. 아비멜렉은 블레셋 사람으로서 이교도였다. 그는 사라가 이스라엘 민족의 어머니가 될 자로 선택된 사실에 대해 그리고 그녀로부터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지금 겉으로 나타나는 상황은 하나님의 계획이 좌절될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상황을 얼마나 쉽게 해결하셨는가! 하나님은 단순히 꿈을 통해 그렇게 하셨다. 그 이상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라는 위기에서 구출되었으며,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킬 것처럼 보였던 장애물은 제거되었다.

여기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은 너무나 쉽게 사람들을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자유"와 관련한 모든 논의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자. 사람이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에 도전하며 맞설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그렇게 하자.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자 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또 다시 전능자를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구경꾼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의도는 많이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실제로 선을 이루는 능력은 결여한 "전능하지 않은" 하나님이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성경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라.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 21:1). 그렇다. 그는 아주 쉽게 왕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 그는 당신이 원하시면 "꿈"을 사용해서도 얼마든지 당신의 뜻을 이루실 수 있다. 💕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20:6).

어떤 사변적인 신학자들은 여기의 말씀에 기초하여 아담에게 선택의 능력을 주심에 있어 하나님이 그의 타락을 막을 수 없었느냐는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위의 구절로 그러한 이론을 세우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이 범죄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었다면, 분명 우리의 첫 조상들에게도 그렇게 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하는 것을 "저지하지" 않으셨나? 그것은 죄가 들어오도록 허락하심으로써 당신의 은혜가 나타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아비멜렉이 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20:8, 9)

아비멜렉이 간음을 "큰 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주목하라. 여기에 나타나는 것처럼 이교도들도 자신들이 행하는 여러 가지 잘못된 행동들을 죄로서 인식한다.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15).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도록 하자. 여기에서 아브라함에 대해 아비멜렉이 말하는 것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주목하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7절).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뻔뻔스러운 거짓말이나 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을 바라보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를 "선지자"로 말씀하시면서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그의 기도의 빚을 지도록 만드셨다. 💕

이와 같이 항상 하나님은 불신자 앞에서 자기 백성을 옹호하신다. 하나님이 발람의 입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해 말씀하실 때도 그랬다.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민 23:21). 하나님은 당신 앞에서 주야로 형제들을 고소하는 원수의 참소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대답하신다.

아, 이것은 얼마나 복된 사실인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이러한 사실에 우리를 아무렇게나 살도록 조장하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에 있음이라"(롬 6:14)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