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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91] 우리 모두의 조상인 아브라함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91] 우리 모두의 조상인 아브라함

En Hakkore 2024. 3. 18. 11:06

구약 성경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앞부분의 책들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단순히 오래 전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담고 있는 역사적(歷史的) 기록 이상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이것은 참으로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족장들의 삶의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그 속에서 고대의 전기(傳記) 이상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단순히 오래 전의 옛 이야기로만 들으면서 영감(靈感)된 기록 안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제적으로 창세기를 죽은 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창세기는 "생명의 말씀"의 일부이며(빌 2:16), 생기로 가득 찬 살아 있는 책이며, 다른 책들은 가지고 있지 못한 특별한 생명력을 가진 책이며, 모든 세대에 영속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책이다.♡

이제 또 하나의 개념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계시하는 한 가지 진리는 그에게는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길은 항상 동일하다는 사실이 필연적으로 따른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모든 세대를 통해 사람들 특별히 자기 백성들을 동일한 원리로 다루신다. 바로 이것이 "역사는 반복된다" 는 잘 알려진 사실의 이유이다.

그러면 그러한 원리를 실제로 적용해 보도록 하자. 방금 이야기한 것이 옳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다루신 것이 오늘날 우리를 다루시는 것의 전조(前兆)가 될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경험한 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의 실례(實例)가 될 것이다. 이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앞 단락 말미에 언급한 결론 즉 "성경은 살아 있는 책으로서 모든 세대에 영속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결론과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제 두 개념을 결합해 보도록 하자.

성경은 살아 있는 책이기 때문에, 그 안에 쓸모없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 물론 그 안에 기록된 이야기들은 모두 예전에 일어났던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낡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경은 살아 있는 책이기 때문에, 그것의 모든 부분은 우리 시대에 적용될 수 있는 유용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또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에, 그의 길은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다루신 것은 오늘날 우리를 다루시는 것의 전조와 실례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브라함의 생애의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이며 유익한 방법으로 읽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 안에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도록 하자.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롬 4:16).

어떻게 아브라함이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는가? 어떤 의미에서 그는 우리 모두의 조상인가? 물론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상징적이며 모형적으로 그러하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생김새라든지 등을 물려받는다. 그들 사이에 닮음이 있다.

아담은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창 5:3). 그와 같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 사이에는 닮음과 비슷함이 있다. 한 마디로 아브라함은 신자의 표본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아브라함의 생애와 우리의 생애 사이에는 긴밀한 상응관계가 있다.

여기에서 또 다시 우리는 앞에서 이야기한 결론과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결론의 타당성을 시험하면서 그것을 좀 더 상세하게 검토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생애를 오래 전에 일어났던 오늘날 별 쓸모없는 이야기로 읽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한 토막의 영감된 역사로서만 읽어서도 안된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그것을 모든 세대의 아브라함의 자손들의 경험을 보여 주는 표본으로서, 그리고 모든 세대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다루시는 다루심을 묘사하는 것으로서 읽어야만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처음에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나? 그는 잃어버린 죄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며 우상 숭배자였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 2:11, 12).

그러다가 무슨 일이 일어났나?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다(행 7:2).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스스로를 나타내셨다. 다음으로 무슨 일이 있었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스스로를 그의 옛 삶에 속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시키도록 부르셨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아브라함은 그러한 부르심에 순종했나? 처음에는 단지 불완전하게 순종했을 뿐이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친척들을 떠나는 대신, 그는 아버지 데라와 조카 롯과 함께 갈대아를 떠났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마땅히 경고를 받아야만 한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는 단지 부분적으로 그리고 마지못해 순종하지 않았나? 계속해서 나아가 보자.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도착한 직후 가혹한 환경이 그의 믿음을 시험한다. "기근"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그는 어떻게 행동했나? 그는 자신의 필요를 하나님께 고하면서 그것이 채워지는 일에 하나님을 바라보았나?

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슬픈 경험으로부터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는가! 우리 역시도 궁핍의 때에 구원과 도움을 위해 세상으로 가지 않았나!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갔던 것처럼 말이다. 계속해서 창세기 16장에 나타나 있는 아브라함을 보라.

그는 아들이 없었다. 하나님은 그의 씨가 약속의 땅을 상속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사라는 여전히 자녀를 낳지 못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나? 그는 오래 참음으로 계속해서 기다렸나? 설령 성경이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시 한 번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불행하게도 아브라함은 육체의 방법을 의지하면서 스스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하갈을 끌어들였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나? 하나님은 참지 아니하시고 아브라함을 버리셨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다. 그러면 하나님은 실제로 그렇게 하셨나?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우리를 그렇게 다루시나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딤후 2:13). 우리는 더 이상 아브라함의 생애를 되돌아볼 필요가 없다.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