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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96] 두 가지 기념물(여호수아 4:1-24)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96] 두 가지 기념물(여호수아 4:1-24)

En Hakkore 2024. 3. 18. 11:09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 곳(곧, 길갈, 19절)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수 4:1-3).

그 열두 돌이 큰 돌들이었다는 것은 그들이 "어깨"에 지고 갔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4:5). 돌을 지고 갈 사람들을 사전에 미리 선정하여(3:12), 그 임무를 미리 준비하도록 했다. 당장 무수한 무리들이 밤을 보낼 수 있도록 적절한 곳에 진을 쳐야 하는 당면 과제를 수행하기에 차질이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진을 친 곳은 후에 길갈이라 불렀는데, 그 곳은 요단 강과 여리고성 사이의 중간 쯤 되는 곳이었다고 한다. 여호수아 4:4에 의하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준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렀는데". 우리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여호수아의 원형이신 우리 주님이 사역 초기에 "열 두 제자를 부르신 것"(막 6:7)을 미리 그림자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고 본다.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수 4:5-7).🍇

여기서 "표징"과 "기념"이라는 두 단어는 그 돌들에게 부여된 이중적인 의도를 주목하게 한다. 여호수아가 그 열두 둘을 "길갈"에 세웠다는 점(20절)을 염두해 둔다면 그 의도를 잘 감지할 수 있다.

그 돌들을 땅에 묻은 것이 아니고, 질서 있게 세워서 이정표 혹은 기념물이 되게 했다. "세우다"의 히브리어 단어는 "서 있게 하다, 솟게 하다"라는 의미이다.

영어 흠정역은 20회에 걸쳐 이 단어를 "세우다"(set up)로 번역한다. 이 단어는 성막을 세우는 일과 관련해서도 사용된다(출 40:2 등). 그러므로 그 큰 돌들은 훗날 사람들이 주목하고 그것에 대해 궁금증을 갖도록 하는 방식으로 정렬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하나식 쌓아올려 석탑처럼 되게 했을 지도 모른다.

첫째, 그 돌 기념물은 이스라엘에게 하나의 "표징"이 되도록 의도되었다. 귀가 아니라 눈을 통해 그들의 마음에 하나의 메시지를 주고자 한 것이다. 돌로써 영구히 남는 설교가 되게 한 것이라 하겠다.

이 "표징"이라는 단어는 아주 충족한 것이다. 우리 주님의 이적들을 가리켜 "표징"이라 칭하니 말이다(요 20:30; 행 2:22, 개역개정은 "표적"으로 번역함, 역주).

모세가 형제들 앞에서 능력으로 행한 두 가지 이적들도 "표징"이라 불렀으니(출 4:1-9), 이는 그가 여호와께서 지명하신 그들의 지도자임을 증명하는 것이요, 또한 전능자의 권능이 그와 함께 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신명기 11:18(개역개정은 "표"로 번역함, 역주)과 사사기 6:17에서는 각각 "표징"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법칙으로 삼는다는 것과 여호와께서 친히 기드온에게 맡기신 일에 성공을 주신다는 증표 혹은 표시였다. 다른 본문들의 경우 "표징"은 미래에 관한 일에 대한 징조 혹은 보증의 성격을 지녔다(삼상 10:1-9; 왕하 19:29).

여호수아 4:6의 "표증"은 이런 여러 의미들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돌탑은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넌 것이 그들 자신의 능력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적을 행하시는 권능에 의해서 된 일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그들이 그 강의 바닥을 딛고 건넜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일하실 것임을 확증해 주는 하나의 보증이요 서약이었다.🫰

둘째, 그 기념물은 이스라엘이 죽음의 강을 건넜음과 이제(모형적으로) 부활의 땅에 서 있음과, 심판이 이미 지나갔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기념"이었다.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서있는 이스라엘은 우리 구주께서 요한복음 5:24에서 표현하신 그 복된 진리를 그려주는 것이었다.

거기서 그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것을 명확하게 선언하셨다. 그런 자가 심판에 이르지 않는 이유는 그분의 보증이 되는 그 분 안에서 그가 이미 정죄를 받았고 그의 모든 죄에 대해 하나님의 충만한 심판을 받았으므로, 이제 법적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자로서, "사망"[죄의 삯인 바로 그 사망]에서 "생명"[율법의 상급이요 구주께서 "크게 하며 존귀하게 하신 그 생명"(사 42:21)]으로 옮긴바 되기 때문이다.

언약궤가 죽음과 심판의 강을 건널 때에 그 언약궤를 따르는 모든 이가 안전하게 건널 때까지 그 물의 흐름이 중지되었는데, 그와 법적으로 하나가 되었고 자의로 그분을 따르는 모든 자가 그의 속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미래의 심판에서 건짐을 받게 하신 것이다. 아멘!🫰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