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창세기 강해 86] 99세 때의 아브라함 본문
창세기 17:1로 다시 돌아가자.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여기에서 하나님이 스스로에 대해 계시하신 것은 이때의 정황과 잘 부합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전능자"로 계시하셨다.
모든 능력을 소유한 자 외에는 아무도 이때의 아브람의 필요에 부응할 수 없었다. 그는 지금 99세였으며, 그의 몸은 죽은 자와 같았다. 사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이미 오래 전에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들이 아들을 가질 것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엘 샤다이, 전능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 "전능자"라는 호칭은 악인의 마음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호칭이지만, 그러나 의인에게 그것은 하늘의 안식을 가져다 주는 호칭이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 18:10).
하나님이 두 번째로 스스로를 엘 샤다이로 계시하신 것은 여기의 창세기 17:1의 상황과 매우 비슷한 상황 아래에서였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창 35:9-11).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스스로를 전능한 하나님으로 계시하시면서 곧이어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신 것을 주목하라. 그것은 여기의 야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은 스스로를 전능한 하나님으로 계시하시면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라고 말씀하셨다(2, 4절). 마찬가지로 창세기 35장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리라"라고 말씀하셨다(11절).
또 창세기 17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씀을 듣는다(1절). 이것은 문자적으로 "아브람에게 보였다"를 의미하는데, 여기 창세기 35:9에서도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여기 두 곳이 - 창 12:7을 제외하고 - 창세기에서 우리가 족장들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에 대하여 읽는 유일한 구절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능한 하나님" 이라는 신적 호칭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창세기 17장과 35장을 비교할 때, 우리는 두 곳에서의 하나님과의 만남이 모두 비슷하게 끝나는 것을 주목할 수 있다.
17장의 만남은 22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라는 말씀과 함께 끝나며, 35장의 만남은 13절에서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라는 말씀과 함께 끝난다.
이와 동일한 신적 호칭이 신약의 서신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얼마나 복된 사실인가!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7, 18).
그리스도는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전능하시기" 때문이다(히 7:25). 그리스도는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전능하시기" 때문이다(히 2:18). 아무것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데, 그것은 그가 "전능하시기" 때문이다(롬 8:39).
우리 구주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인데, 그것은 그가 "전능하시기" 때문이다(빌 3:21).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전능하시기" 때문이다(에1 3:20).
우리 구주는 "능히 우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우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것인데, 그것은 그가 "전능하시기" 때문이다(유 24).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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