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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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쇠퇴의 원인(2) 죄를 죽이는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자신을 쳐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진보는 시종일관 이것을 얼마나 오래 지속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회개할 때에 그리스도에게 바치기로 결심했던 것을, 그리고 세례받을 때에 마음 속에 다짐했던 것을 얼마나 집요하게 고수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참으로 회개했다면 세상과 육체와 마귀를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했을 것이다. 우리의 세례가 성경적인 것이었고 신자가 이 법의 영적이고 상징적인 의미 가운데 지혜롭게 들어갔다면, 그는 옛 사람을 벗어버렸을 것이며 그가 물에서 올라왔을 때에는 - 이는 마치 상징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은 것과같이 -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 당당히 걸어갔을 것이다..
둘째, 쇠퇴의 원인 갈라디아 5:17에서 언급되는 '육,' 즉 내재하는 죄는 단절되지 않는 것으로서, 언제나 '영,' 즉 신자의 영혼 속에 있는 은혜의 원리를 부단히 거스린다. 이 육적인 성향은 언제나 그 안에 내재해 있으며 사람이 그것을 깨닫든지 못 깨닫든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나도 은밀하게, 묘하게, 기만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외부적으로 불순종의 행동을 하게 하며, 내부적으로 거룩한 자가 가장 싫어하는 불신앙. 자만. 자기 의를 생기게 한다. 사람 속에 있는 이 원수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매우 유리한 발판을 마련한다. 그것은 즉 우리가 중생치 못한 성향으로 말미암아 그 세력이 지배하는 것을 용납하기 때문이며, 그것의 저주스러운 간교함 때문..
첫째, 쇠퇴의 성격(2) 사람이 하나님의 것들에 대해 흥미를 잃어 버릴 때 쉽사리 나태해진다. 이러한 은혜의 수단들은 전적으로 무시되지는 않았지만 형식만 갖추었지 실제로는 기쁨도 없고 유익도 없다. 이때 성경은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써가 아니라 의무감으로써 읽혀진다. 은혜의 보좌는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맛보기보다 양심을 만족시키는 정도로 끝난다. 심령이 그리스도로 채워지지 않을 때 마음은 세상적인 것들로써 채워진다. 양심이 무디어 질 때 타협의 영이 역사하여 엄격함과 사려깊은 데서 떠나 부주의와 태만함에 빠진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식어질 때 그에 대한 순종이 너무 어려워 선을 행치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이미 주어진 은혜를 사용하지 못할 때 부패는 극심해진다. 우리가 주 안에서와 그의 능력 안에서 ..
첫째. 쇠퇴의 성격 우리가 여기에서 관심을 갖고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저작자가 '타락'이라고 명명했던 것으로 이 말은 빈번히 무시되고 사용하지 않아왔던 것이다. 여느 다른 신학적인 용어와같이 이 말은 적잖은 논쟁의 불씨가 되어 왔다. 어떤 학자들은 이 말이 신약성경에 한 번도 대두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 적용시켜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좀 유치하다. 그러한 말은 없을지라도 거기에 관계된 말은 얼마든지 있다. 한 번은 베드로가 주님을 '멀찍이' 따라가다가 원수들이 피워 넣은 불을 쬐면서 주님을 몇 번이나 맹세코 부인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확실히 타락의 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독자가 이 말은 다른 말로 대체시킨다 해도 우리는 거기에 이의를 달지 않겠다. 또 ..
하나님과 사람의 중보자로서 그리스도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며, 이것들은 그의 백성들에게도 역사한다. 신자가 때때로, 혹은 영원히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은 그의 거대한 창고에 쌓여 있다. 거기 충만한 가운데 신자들은 중생의 은혜를, 의롭게 하는 은혜를, 화목케 하는 은혜를 받는다. 거기 충만함 가운데 그들은 거룩케 하는 은혜, 보존하는 은혜, 열매맺는 은혜를 받는다. 끌어오게 역사하는 믿음이다. 요구되는 것들은 그에게 채움받기를 원하여서 빈그릇을 갖고 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의 충만한 것들은 우리의 죄와 곤핍을 무한히 초월한다. 그의 충만함 가운데 우리는 자유롭게 초청받는다. "예수께서 일어서서 외쳐 가라시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요 7:37). 이 말의 의미는..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그에 대해 신령한 지식을 갖는 것과 그에 대해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의 성품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묘사한 자의 말을 인용하자.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리스도는 그에게 있어서 모든 관심의 대상이며, 믿음과 사랑의 대상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심령을 구원하신 자이시며, 그가 영광을 돌리길 원하는 자이시며, 그가 그의 이름과 명성을 널리 펼치길 구하는 자이시며, 그의 모본을 힘써 따르길 경주하는 자이시다. 그리스도는 그에게 믿음을 공급하신 자이시며 그의 모든 행사 가운데 살아계신 자이시다. 그로부터 신자는 신령한 생명을 공급받으며..
신자가 그의 구원을 그리스도에게 돌리고 영원히 그와 함께 시간 보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분명코 그는 주님에 대해서 더 분명히 더 명확히 알기를 주요한 관심사로 살고 또 거기에 집중한다. 다른 어떤 지식도 그와같이 중요하고 그와같이 복되고 그와같이 만족할 만한 것은 없다.♡ 우리는 너무도 보잘것 없는 이론적이요 사색적이요 무능력한 지식을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초자연적이요 영적이요 신앙적이요 변화시키는 지식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 3:8).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이 지식은 얼마나 포괄적인가! 그는 이들의 주요한 요점을 그의 말씀 가운데 잘 나타내셨다. '그리스도'는 그의 인격과 직무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유일한 법칙이요 근거이다. 그리스도는 그것의 직접적인 목적으로서 말씀 안에 나타나셨다. 성령이 그의 것들을 취하여 중생한 자들에게 나타내실 때에, 그는 그 행위를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키셨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사람들에게 더 없이 귀중한 존재가 되셨다. 그렇게 함으로 그 심령은 그의 사랑을 만끽하고 그의 완전하심을 기뻐하고 '모두가 사랑스런' 분으로 그를 바라보게 된다. 그리스도는 믿음의 대상이 되실 때, 믿음은 그를 영적으로 지각하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 그는 진정 실존하는 존재가 되신다. 그의 심령이 그와 함께 역사하고 그의 사상이 그의 인격, 칭호, 직무, 완전하심, 사역과 함께 작용할 때, 그는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로다"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