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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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 말씀은, 당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한 것들을 그를 위하여, 그의 섬김을 위하여, 그의 기쁨을 위하여, 그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바치다'란 이 말은 히브리어로 자람이며 미가 4:13에 '성별하다'로, 에스겔 44:29에 '헌신하다'로 번역되어 있다. '드리다'란 이 말은 헬라어로 파리스테미이며 누가복음 2:22에서 우리는 예수를 드리는 사건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주께 드리니라"를 보게 된다. 그리고 바로 다음 구절에서 '주의 거룩한 자'라는 말을 본다. 이 최초로 언급된 말씀이 우리의 위대한 주님의 예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매우 의..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함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주요한 목적이며, 본질적인 의무이며, 특출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울 서신서에서 분명히 명시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이러한 호소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며 대부분 서신서들의 권고하는 부분에서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바울 사도는 복음의 중요한 교리를 전개해 나간다. 그는 한때 로마서 6:11-22의 권고를 삽입함으로써 말의 실마리를 풀어 나갔다. 이들의 의미가 다음과 같이 간단하지만 포괄적으로 요약하여 나타나 있다.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자같이 하나님께..
2. 하나님께 헌신 육체를 죽이는 이 평생의 과업은 결국 부정적인 측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인 측면으로서 구속받고 중생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위해 살며, 자신을 온전히 그에게 바치며, 그를 기쁘시게 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기능과 능력들을 사용한다. 그가 중생하지 않았을 때에는 '자기의 길'(사 53:6)로 나갔으며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행하였으나, 중생 후에 그는 육체와 세상과 악마를 미워하였으며 하나님을 절대적인 주님으로, 지고의 목적으로, 영원한 분깃으로 모셔들인다. 육체를 죽이는 일은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하나님이 정죄하시는 것들을 돌이키고 부인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을 매일 새롭게 계속적으로 행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헌신은 신자가 중생할 당시에 주님께 자신을 드리고(고후 8..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이 중대한 과업을 성취하는가? 첫째, 악한 성향을 죽임으로써 가능하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 그것의 불을 끄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연료를 공급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하나는 거기에다 물을 뿌림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를 쇠약하게 하거나 독단적인 금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그들을 무질서하게 좋아하는 것을 금하신다. "우리가 몸을 위해 고기를 구함은 필요한 일일 뿐더러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정욕을 위하여 고기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킨다 - 시 78:18".(매튜 헨리) 육신을 위하여 '도모한다'는 것은 육신의 소욕을 따라 섬기는 모든 것을 말한다. 세상적인 정욕은 제어되어야 ..
"그러나 너희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여기에 '너희가 행하면' 이라는 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에게 부과된 의무이며 자의지적인 과업이다. 그러나 조심할 것은 이것이 신자 자신으로서 충분하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영으로써(through the Spirit) 이루어지는 성질의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서 우리가 실수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이 너희를 통하여'가 아니라 '너희가 영으로써' 라는 것이다(It is not, 'if the Spirit through you', but 'if ye through the Spirit'). 신자는 이 일을 시도함에 있어서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다. 성령은 이 중대한 사역을 행함에 있어서 우리의 책임수행을 면제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
우리가 관심을 표명했던 것은 충분히 납득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성경을 읽고 또 이 가르침에 익숙해지기 위한 단면에 불과할 뿐, 실제로 말씀을 먹고 그것으로 변화받기에는 아직도 소원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함으로, 그것으로 유익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는 거룩한 마음이 요구된다.♡ 그 사람이 '영접'을 하기 이전에 말씀에 일치한 삶을 살아야 하며 변화를 받아야 한다. 사람이 거룩해지기 위하여는 죄가 없어져야 하며 자아는 부인되고 부패는 죽어야 한다. 우리가 여기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는 성경과 일치된 순서로 예시되고 논증되었다. 우리는 '선을 사랑하기'(암 5:15) 전에 '악을 미워해야' 한다. 우리는 '좋은 일 하기를 배우기' 전에 '악행을 그만 두어야 한다'(사 1:16,17). 우리는 '그리스도를 ..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영적인 성장을 위해 제정하신 여러 가지 수단들을 사용하려 할 때, 세 가지 주요한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 그것들에 너무 많은 강조점을 두거나 의지하려는 경우이다. 그것들은 단지 '수단'에 불과할 뿐, 하나님이 그에게 복주시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둘째, 첫째와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경우로서, 이것들을 과소평가하거나 이것 이상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광신도들로서 자신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도움들과는 초월해 있다는 것이다. 세째, 이것들이 하나님에게서만 온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경우이다. 확실히 그리스도인에게 번창을 가져오는 특수한 수단들에 관해선 견해가 다양하며, 이 주제에 관한 책을 저술하려는 사람들 중에도 방법..
우리는 앞서 영적인 성장의 주요한 수단에 관하여 이미 말했기 때문에 또 다시 한 장을 할애하여 제시한다는 것이 어쩐지 불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도인 생활의 성공 여부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새로이 공급받는 데 달려 있다면, 어찌하여 영적인 성장을 촉진시키는 수단들을 이토록 상세히 묘사할 필요가 있겠는가? '은혜를 새로이 공급받기 위해 구한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다. 이 '수단들'은 실제로 은혜가 우리에게 오는 통로 역할을 한다. 산상수훈에 나와 있는 마태복음 7:7을 설명한다 할 때 그것은 다음의 사실을 가리킨다. 신자로 하여금 이 땅 위에서 신령하고 초자연적인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들은 은혜의 보좌 앞에서만 구해질 수 있지만 신자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