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130)
En Hakkore
이제 우리는 회복의 조건부, 이를테면 현안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이 용어는 우리 중 어떤 이에게 부담스런 말이겠으나, 여기에 관련하여 이것은 바르게 시정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여러 저작자들이 갖가지 다른 방법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우리는 사용코자 하는 말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이것을 조건부라 칭하였다). 우리는 만약이라도 죄지은 성도가 하나님과 교제관계를 회복하기 전에 어떤 조건들을 구비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 말을 법정적인 의미(Legalistic sense)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을 수행한다고 당사자에게 공로로 돌리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물건을 사고 팔듯이 어떤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행한 데 대한 보상으로 복을 부어 주시는 것도 아니다. 그는 ..
성령만이 메말라 시들어 가는 신자에게 변화받고자 하는 소욕을 불러일으켜 주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목적에 사용되는 수단들을 제정해 놓으셨다. 우리가 이러한 수단들을 경시한다며 다음과 같은 처지로 전락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가 화가 있도다 모함자가 심히 모함을 행하도다 모함자가 모함을 행하도다 하였도다"(사 24:16) 그래서 더 나음을 입기 위한 시도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수단들을 무시하면서 더 낫기를 소망한다면 우리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질 것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행치 못하는 사상을 그리워하거나 회복케 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의 부패를 감지하고 그것에 마음이 동하면 그때 우리는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요구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그래야만 치료가 행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한다. 정작 그들 장본인들이 스스로 이르기를 타락한 상태에서 회복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며, 그 요구조건에 부합 하기가 매우 쉬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은 구원얻는 일이 가능한 방법 중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죄인에게 있어서 복음에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 이상은 아무것도 요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정작 그것을 이끌어 오는 데 요구되는 이 은혜의 기적이 전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항하던 완고한 마음이 그의..
오늘날 기독교계에서는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부패하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차라리 에브라임의 실상을 방불케 한다.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저희가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하는도다."(호 7:9,10)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당신들의 처지는 지금 어떠한가? 당신들은 진정으로 신령한 기쁨과 평강을 누리고 있는가? 이것들이 믿음생활의 불가불리의 열매들이며,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가운데 나타난 것들인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들을 환상적으로 상상적으로 생각만 함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 진수를 찾아 맛봄을 말한다...
독자는 이제 우리가 말한 말의 의미를 보다 쉽사리 깨달을 줄 믿는다. 즉 영적인 타락에서 회복함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그리고 타락한 상태에서 그 비참함을 지각하는 일과 그것에서 구원받을 필요성을 절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대충 깨닫고 있을 것이다. 죄는 지각을 어둡게 하고 심령을 둔하게 한다. 이것은 불신자에게 적용됨같이, 어느 정도 혹은 극단적인 경우에는 거의 완전히 타락한 신자에게 해당된다. 결코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이것은 큼직한 악명높은 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중에는 결코 이런 죄를 짓지 않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 마음의 지각이 어두워져서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분리되어 '하나님과의 교제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옮겨졌을 뿐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사람들이 이러한 수단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당면한 어려움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회복의 어려움 부흥과 회복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필요하며 또 가능한 것이지만, 이것을 달성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영적인 타락을 허용한 자의 회복과 관련하여 문제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타락한 자가 하나님의 요구조건에 부합하는 문제에 있어서 이것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적어도 삼중의 어려움이 있다. 첫째는 타락한 자가 자신의 어려운 위치를 깨닫는 점에 있어서의 어려움이요. 둘째는 회복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면에 있어서의 어려움이요, 세째는 하나님의 요구조건에 부합하는 일에 있어서의 어려움이다. 죄는 사람으로 어둡게 하는 힘을..
오늘날 그렇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찌하여 회복의 가능성에 대해서 그렇게 절감하지 못하는가? 여기에 대한 주요한 이유는 그들이 잘못된 가르침을 배워 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죄성을 가볍게 생각하며, 하나님 율법의 영성과 엄정함을 그저 막연히 깨닫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희미한 개념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의 양심은 마비되었고 자신의 현상태에는 눈이 감겼으며 거기에서 빠져나갈 길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 '내 양은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 는 말씀을 귀가 닳도록 들어 왔기 때문에 타락한 자는 당연히 회복함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조건들에 부합하는 것이 인간 편에서 얼마나..
이제 우리는 회복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우리 중 어떤 이들에게는 우리가 이런 데까지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는가 세목을 들어 논할 가치가 있겠는가 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만약 그러하다면 확실히 그들은 다음의 사실들을 잊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즉 사단이 많은 죄인들에게 완전히 소망이 없다고 속삭이고 있음으로, 그들은 자비를 얻지 못할 정도로 하나님께 반역하며 완전한 절망의 상태로 떨어지게 된다. 그는 타락한 성도와 함께 동일한 전략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특권과 빛에 대해 죄를 지었음으로 완전히 절망적이라는 확신을 심어 줄 것이다. 죤 번연의 일대기를 읽은 사람들은 이를 잘 알 것이다. 그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그렇게 오랫동안 누워있었음으로 그때 마귀가 그에게 와서 도저히 용서받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