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130)
En Hakkore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부르신다. 모든 사람들은 그의 본래적인 상태론 진정한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며, 독자적이고도 완전 충족하신 중보자, 능히 구원할 수 있으신 의로우신 구속주에 대해 철저히 무지하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그를 알 수 있는가? 이것은 그들의 영혼에 작용한 성령의 초자연적인 생명으로 살리시고, 그 마음에 하나님을 아는 진리의 지식을 부여하시고, 그 심령에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는 영적인 지각을 주입하신다. 우리에게 나타난 그리스도의 외적 계시는 기록된 말씀이며, 이것은 그에 대해 알려 주고 그를 증거하며, 이 말씀 안에서 그는 분명히 자유롭게 충만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아무리 계시라 하더라도 이 외적 계시에는 성령께서 몽매한 마음에 빛을 비추지 않으시..
4. 그리스도와의 동사(同事) 다음엔 분명히 이것이 나온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소유하기 전에 성경을 소유해야 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해 준 책이다(요 5:5, 39). 성경이 가지 않는 곳에 그리스도는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 가운데 그가 충분히 계시되어 있으며 이것은 그에 관한 기록이다. 모든 가르침은 그에게 집중돼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훈'이다(요이 9절). 그 안에서 모든 가르침이 완전히 성취되었다. 그 안에서 모든 약속이 확증되었다(고후 1:20). 그 안에서 모든 예언이 절정을 이룬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시다(계 19:10). 그리스도를 떠난 교훈은 '메마르다.' 그리스도를 떠난 명령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 그리스도를 떠난 약속은 더 이상 '예'..
성경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 정도가 아니다. 물론 그것은 어떤 예술가도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양식과 풍취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런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진귀한 보물이 묻혀 있는 광산 정도가 아니다. 물론 거기에는 킴벨라에 매장되어 있는 양보다도 훨씬 더 풍부한 보고가 있기는 하다. 우리의 매일의 삶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다는 사실은 만족할 만하게 깨달아지지 않는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우리는 이 마지막 의미심장한 주석을 생략하지 않았던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말씀을 단순히 지적으로 만족시켜 주려고, 호기심을 작동시켜 상상의 나..
둘째, 영감받은 성경은 '책망'에 유익하다. 이 말은 헬라어로 5회에 걸쳐서 '책망하다'로, '단 한 번에 걸쳐 잘못을 나무라다'(마 18:15)로 번역되어 있다. 여기에 성경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왜 이토록 쓰디쓴지를 말해 주는 주요한 이유가 있다. 성경은 그 사람에게 한 표준을 설정해 놓고서 그가 얼마나 멀리 벗어났는가를 알려 주며, 그에게 쓰디쓴 것들을 요구하며, 악하고 음란한 것들을 금하고 있다. 이와같이 성경의 거룩한 가르침은 그를 여지없이 정죄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거룩을 가르치며, 불신자가 매우 싫어하는 바, 모든 악한 모양을 책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말씀을 읽는 자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해주며, 경건치 않음을 책망하며, 내적으로 외적으로 말씀에 일치된 삶을 살지 않을 때 그를 ..
이제 우리는 말씀을 높이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말씀의 목적을 바로 알고 거기에 따라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하겠다. 말씀은 우리에게 기록되어진 주요한 목적에 대해 분명히 알려 준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 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성경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감동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본래적으로, 필연적으로 유익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이 성경의 수신자들에게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만들어 내시지 않는다. 그러면 성경이 어떤 점에서 유익한가? 첫째, 교훈에 관해서이다. 이것은 즉 "경건에 관한 교훈"(딤전 6:3). 온전하고 건전한 교훈을 말한다. 이 말 교훈의 뜻은 '가르침' 혹은 '훈도' 혹은 '원리'를 의미한다. 우리..
3. 말씀을 높이는 일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무오한 말씀을 우리의 모든 애정과 사상과 일상 생활 가운데서 마땅한 위치에 두어야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를 알고 깊이 깨달음을 받은 대로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은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시 138:2) 하신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거기에 둔다면 우리는 그것을 다른 무엇보다도 훨씬 높이는 결과에 이를 것이다(시 119:72). 우리가 말씀을 떠난다면 영적으로 완전한 암흑 가운데 빠질 것이다(엡 5:8). 성경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우리에 대한 그의 태도에 대해서, 그에 대한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성경이 아니고서는 죄의 본성이나 해악을 알지 못하고 죄의 오염이나..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러한 우리의 드림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은총에 비해 매우 보잘것없고 하찮은 것이지만,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 바치는 것을 기쁘게 받으시며 또 기쁘게 표현하셨다. 이 말은 "행악한 자의 희생은 여호와께 싫어함이 되느니라"(잠 15:8)는 말씀과 날카롭게 대조된다. '영적예배'(reasonable service)보다 나은 역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리적이고 합당한 방식은 신빙성이 있는 대안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확실히 지적으로 섬김받기를 원하고 계시지만 맹목적으로 미신적으로 섬김받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말씀에 따라 합당한 예배'라고 번역될 수도 있다. '섬김'(service :그러나 개혁성경에..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삶을 살도록 부름받았다. 그런데 이것은 아무 대가 없이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아무리 자신해서 드려진다 해도 희생에는 희생의 대가가 따라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일치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빌 3:10). 이것은 지적으로, 자의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이것은 마치 진정으로 만족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같이, 마치 어떤 사람이 결혼생활에서 그 자신을 상대편에게 아낌없이 바치듯이 신자는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의 것이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나의 것이로구나"(아 6:3)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통회하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비천하게 행해져야 한다. 이는 내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죄에 머물러 있었으며 그것의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