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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90] 영적인 쇠퇴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90] 영적인 쇠퇴

En Hakkore 2024. 4. 6. 21:20

첫째, 쇠퇴의 성격(2)

사람이 하나님의 것들에 대해 흥미를 잃어 버릴 때 쉽사리 나태해진다. 이러한 은혜의 수단들은 전적으로 무시되지는 않았지만 형식만 갖추었지 실제로는 기쁨도 없고 유익도 없다. 이때 성경은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써가 아니라 의무감으로써 읽혀진다.

은혜의 보좌는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맛보기보다 양심을 만족시키는 정도로 끝난다. 심령이 그리스도로 채워지지 않을 때 마음은 세상적인 것들로써 채워진다. 양심이 무디어 질 때 타협의 영이 역사하여 엄격함과 사려깊은 데서 떠나 부주의와 태만함에 빠진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식어질 때 그에 대한 순종이 너무 어려워 선을 행치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이미 주어진 은혜를 사용하지 못할 때 부패는 극심해진다. 우리가 주 안에서와 그의 능력 안에서 강해지지 않으면 사단의 공격에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결단코 중생치 못한 상태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 자신이나 다른 이들이 그를 중생한 자로 여기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심령 가운데 있는 은혜는 결단코 소멸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역사를 거의 경험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성도에게 항상 신령한 원리로 역사하고 있지만, 언제나 생기있게 역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역사는 때에 따라 방해받을 수도 있으며 신령한 것들에 관심이 적을 때가 있다. 은혜가 힘을 잃고 충만하지 못하고 내적 위로가 약화될 때가 있다. 육이 힘을 얻어 거세게 역사할 때 그리스도인은 가장 비참하게 된다.

그러면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자기 백성들에게서 신령의 은혜의 역사를 거두시며 그들에게 위로의 역사를 지체시키시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아마 신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졸 수 있으리라.

하나님은 독단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행위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시고 이것을 행하신다. 그가 어떤 자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어떤 자에게는 두 달란트를 자기의 좋아하는 대로 주신다. 이와마찬가지로 그는 그의 기뻐하시는 대로 백성들 중 어떤 자에게는 은혜의 분량을 달리 주신다.

누가 이 일에 대하여 불평을 토로한단 말인가. 그때에는 한 마디로 그의 입을 막게 하는 주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 보라. "내 것을 가지고 이렇게 하는 것이 합당치 않단 말이냐?"(마 20:15)

하나님의 본성과 섭리와 은혜에 있어서 지고하시고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뜻대로 나눠 주신다. 하나님은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으시며 누구에게도 영향받지 않으신다. "모든 일을 그 마음에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일을 하신다"(엡 1:11). 이렇게 하여 그는 온유하게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러나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 성령의 새롭게 함과 위로를 주시지 않음으로 자기의 고유한 권리를 행사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보다 나은 지식을 주어 온전히 의지하도록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들 자신들의 부패함과 선을 이루기에 무능함을 깨닫게 하신다.

그들은 죄의 지배와 죄책에서는 구원받았지만 아직도 그 세력에서는 들림받지 못했다. 거룩하고 신령한 성품이 주입되었지만 그들은 단지 약하고 보잘것 없는 피조물일 뿐이다. 그것은 단지 그것을 지으신 자에 의해 보존될 뿐이다. 이 새로운 성향은 그 자체에 고유한 능력이나 힘을 지니지 못하였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에 따라 행사할 뿐이다.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사 45:21). 모든 신자는 이 말을 인정하지만, 보통 어려운 체험을 겪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기의 능력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여호와에게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자비로운 성령의 역사를 멈추시는 것은 징계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적인 면에 있어서 이것은 우리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성도가 이러한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기를 게을리한다면, 그는 반드시 넘어질 것이며 그때 잘못은 전적으로 그에게 달려있다. 왜냐하면 이 수단들을 통하여 역사가 성령의 습관적으로 흘러 넘치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시험들을 우습게 여기다가 비참한 실패를 맛보게 된다면, 그때 성령은 슬퍼하실 것이며 위로하는 사역 대신에 견책하는 사역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래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시지만 그로 하여금 당신이 죄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분노의 심판을 행하시지는 않지만 진노하시는 아버지로서 그를 징계하실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전에 하나님과 누리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사 25:9; 렘 5:25; 학 1:9,10 참고)

하나님은 잘못을 저지른 성도들을 향해서 칼을 빼지는 않지만, 그들에게 막대기를 사용하신다.

"만일 그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치 아니하며 내 율례를 피하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시 89:30-34).

'매를 순히 받으며'(미 6:9) '그의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며'(벧전 5:6) 우리의 어리석은 것을 떨쳐 버림은 우리의 지혜와 관계가 있다. 우리가 만일 응답해야 할 회개는 하지 않고 그 길을 계속 고집한다면 점점 더 무거운 징벌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복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다"(요일 1:9).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의 능력있는 역사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때 가장 안전한 길은 그가 주를 기쁘시게 못할 일을 당장 그만 두고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하여금 알게 하옵소서"(욥 10:2)라고 부르짖어야 할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224

■ 학개 1장 9,10절.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