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159)
En Hakkore
여기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신자 안에 있는 육체"와 관련한 가장 상징적이며 두드러진 그림을 발견한다. 신자 안에 있는 "육체"는 얼마나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것인가! 또 그것은 얼마나 고치기 어려운 것인가! 하나님은 그것에 대해 놀랍도록 오래 참으시며 다투시는 가운데, 마침내 그것을 이기신다.♡ 첫째로, 에서에게 보낼 예물을 선택하고 배치하는 것에서 우리는 "육체"의 성격과 활동을 보게 된다. 그것은 계획하며 전략을 세운다. 둘째로, 야곱의 경험 안에서 우리는 "육체"의 무력함과 무가치함을 보게 된다. 셋째로, 오직 하나님과 더불어 "홀로"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아무것도 아님(nothingness)을 배우게 된다. 넷째로, 야곱과 더불어 씨름하기 위해 온 신비한 방문자에게서 우리는 하나님이 신자..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25절).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쉽게 야곱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그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실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단지 "허벅지 관절을 건드리는(touch)" 것뿐이었다(한글개역개정판에는 "허벅지 관절을 치매"라고 되어 있음). 이로써 한 순간에 야곱의 모든 힘은 사라지고 말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사건의 비밀을 여는 두 번째 열쇠를 발견한다. 야곱이 가진 모든 자원은 이제 다 없어졌다. 하나님의 손이 한 번 살짝 건드리는 것으로 그는 완전히 무력해졌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다루심의 목적이다. 우리..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밤에 일어나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32:21-24). 우리는 여기에서 야곱의 생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기의 순간을 보게 된다. 창세기는 야곱을 두 가지 모습으로 제시한다. 이를테면 하나는 야곱의 모습으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모습으로 말이다. 전자는 자연적인 사람이며, 후자는 영적인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공식적으로 받게 되는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빼앗는 자"라는 이름을 가졌던 자는 이제 "하나님이 명령하시다" 라는 이름을 ..
앞장에서 우리는 밧단아람으로부터 돌아오는 도중에 야곱에게 벌어진 사건을 살펴보았다. 그때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를 만났는데, 그들은 두 무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아마도 그들 가운데 한 무리는 앞에서 그리고 다른 한 무리는 뒤에서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사들이 이와 같이 배치된 것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은 방금 야곱을 그의 뒤에 있는 적으로부터 구원하셨다(라반의 무리). 그와 같이 이제 하나님은 그를 그의 앞에 있는 적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다(에서의 무리). 천사들이 사라지고 난 후 야곱은 사자들을 에서에게 보내 그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자 했다. 사자들은 곧바로 야곱에게로 돌아와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두려운 소식을 전했다. 그리하여 야곱은 ..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32:6).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볼 때, 야곱이 보낸 사자들은 단지 멀찍이서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오는 것만을 발견했을 뿐 자신들의 메시지를 그에게 전달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에서가 이미 자신이 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보고는 틀림없이 야곱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야곱이 외삼촌의 집을 떠나온 것이 불과 두어 주 전의 일이었다. 그의 여행은 조용히 진행된 것이었지, 결코 요란스러운 행차가 아니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에서가 그것을 알 수 있었단 말인가? 그 동안 복수심에 불타 계속해서 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단 말인가? 라반의 일꾼들 가운데 에서가 보..
앞장에서 우리는 야곱이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밧단아람을 떠난 것을 살펴보았다(창 31:3). 그리고 그렇게 떠난 야곱을 라반이 추격했다가 마침내 둘 사이에 감동적인 작별을 하게 된 경위도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야곱에게 일어난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을 살펴보고자 한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창 32:1). 지금 야곱은 순종의 길 위에 서 있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또 다른 계시로 그에게 은총을 베푸심으로써 그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그에게 용기를 주셨다. 그리고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지금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일 즉 400명을 거느린 에서와 만나는 일을 위해 준비하시고 계..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기에 앞서 야곱이 밧단아람을 떠나는 이야기와 관련하여 한 가지 매우 실제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그리피스 토머스 박사(Dr Griffith Thomas)는 이 사건이 우리에게 신자가 매일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매우 유용한 원리들을 제공해 준다고 말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우와좌왕하곤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특정 문제와 관련한 하나님의 뜻을 확신할 수 있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우리가 종종 마주치는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야만 한다. 💕 의심의 여지없이 하나님은 분명한 인도하심 없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우리는 어떤 성경 인..
라반의 집에 "드라빔"이 있었던 사실은 그의 가정이 여전히 바벨론의 우상 숭배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을 보여 준다. 그가 참 하나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창 31:53을 보라). 라반은 훗날 스바냐 선지자가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 이라고 묘사한 사람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습 1:5). 라반의 종교적인 삶 가운데 나타나는 이러한 이상한 모순은 오랫동안 성경 연구자들을 혼란에 빠뜨린 한 인물 위에 빛을 던져 준다. 그는 발람이다. 여기의 신비한 선지자는 점을 치는 이교도 예언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호와와 어느 정도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발람은 라반의 자손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러한 사실은 라반의 종교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