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159)
En Hakkore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2 상반절). 어떤 두려운 사건이 일어났음에 틀림없다. 죄가 하나님에 대항하여 감히 자기의 가증한 머리를 들었으며, 그와 함께 죽음과 그에 수반되는 모든 악들이 들어왔다. 이로 인해 창조주의 아름다운 작품은 망가졌다. 처음에 그토록 아름다웠던 것은 이제 망가져 버렸으며, 심히 좋았던 것은 심히 악한 것이 되었다. 빛은 꺼졌으며, 땅은 심판의 수면(水面) 아래로 가라앉았다. 처음에 완전했던 것은 폐허가 되었으며, 깊음의 수면 위에 어둠이 거하게 되었다. 아, 이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창세기 1장의 첫째 절과 둘째 절 사이의 대조보다 더 큰 대조를 우리는 결코 상상할 수 없다. 이와 같이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초의 땅은 폐허가 되었다. 최초의 사람..
창세기 1장은 얼마나 놀랍도록 간결한가! 최초로 천지가 창조된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단 한 절로 충분하다(1절). 또 폐허가 된 땅의 무시무시한 혼돈을 이야기 하기 위해 또 하나의 절이 할당된 것이 전부다(2절). 또 채 서른 개도 되지 않은 절(節)들로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든" 6일 동안의 역사(役事)를 이야기한다. 이 세상이 배출한 모든 문학가들과 역사가들과 시인들과 철학자들의 모든 재주를 다 합친다 하더라도 창세기 1장과 견줄만한 작품을 결코 고안할 수 없을 것이다. 주제의 심원(深遠)함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는 얼마나 단순한가! 범위의 광대함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은 얼마나 간결한가! 과학적인 정확성에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용어는 전혀 사용되지 않은 것을 보라. 이 세상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는 땅의 상태와 관련하여 1절의 상태보다 훨씬 나중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백여 년 전에 찰 머스(Dr. Chamers)는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하고 공허하며"(was)가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으며"(became)로 번역되어야만 함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1절과 2절 사이에 어떤 엄청난 사건이 개재(介在)되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한 사실은 이사야 45장 18절로부터 확실해진다.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이사야는 땅이 본래 창세기 1장 2절이 묘사하는 상태로 창조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선언..
성경이 시작되는 방식은 그것의 신적 저작권과 정말로 잘 어울린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최초의 창조와 관련하여 성경에 기록되 것은 이것이 전부이다. 우리로 하여금 창조의 연대(年代)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창조세계의 전체적인 모양이라든지 혹은 그 안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계시되지 않는다. 또 최초의 창조와 관련하여 신적 건축자가 사용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언급되지 않는다. 우리는 최초의 하늘과 땅이 수천 년 전에 창조되었는지 아니면 수억 년 전에 창조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창조가 한 순간에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오랜 세대의 간격을 두고 이루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오직 단순한 사실 그 자체만 언급될 뿐이다. "태초에 하..
창세기에 기도의 중요성과 가치가 나타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아비멜렉의 목숨이 부지된다(20:17).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발걸음을 인도하사 이삭의 아내를 찾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다(24장). 또 하나님은 야곱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 창세기에 성도의 승천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았다(5:24). 그는 죽음의 문을 통과하지 않았다. 그는 여기에 죄와 고통의 영역으로부터 죽음을 알지 못하는 영광의 영역으로 갑자기 옮겨졌다. 창세기에 신적 성육신이 처음 선포된다. 장차 오실 자는 초자연적으로 잉태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세상에 들어오..
예로부터 창세기는 "성경의 모판"으로 일컬어져 왔는데, 그것은 참으로 합당한 이름이다. 창세기에서 거의 모든 위대한 교리들이 싹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이어지는 책들에서 보게 되기 때문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천지의 주인인 지극히 높은 자"로서뿐만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계시된다. 창세기에서 우리는 삼위일체 즉 신성(神性) 안에 있는 인격의 복수성의 첫 암시를 보게 된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1:26) 창세기에서 인간은 먼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다음으로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존재로서,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로 돌이켜진 존재로서 나타난다. 인간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으며(6:8), 하나님과 동행하며(6:9),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
3년째 코로나 팬데믹이 지속되고 있는 요즘... 나눔하던 성화론을 마치기 전, 처음으로 설문조사겸 투표를 해 보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워가면서 방학이 되면 따뜻한 구들방에 앉아 주요 장들을 통채로 외우며 또 알아갈수록 거저 하나님 말씀이 좋았습니다. 한창 젊은 20대에 고향을 떠나 수원으로 올라오면서 평생을 작은 교회를 개척하시며 히브리어, 헬라어 교수로 신학자로 하나님 말씀을 깊이있게 풀어 해석하며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때로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재미있게 공부하며 지냈던 기억이 새롭기만 합니다. 그렇게 일찍부터 훈련을 받다 보니 진리의 바른 지식위에 서기를 좋아했던 청교도의 뿌리깊은 영성을 사모하게 되었고 그렇게 강해설교를 좋아하다 만나게 된 아더핑크 목사님은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