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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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창 37:12, 13). 12. 아버지의 보냄을 받은 요셉. 위에 인용한 구절은 우리를 요셉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적으로 보여 주는 두 번째 그림으로 데려간다. 여기에서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내가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라고 말한다. 이러한 말씀은 우리에게 야곱의 마음을 잘 보여 준다. 그는 그들이 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요셉의 형들이 잘 있는지 여부에 관심을..
6. 그의 채색옷. 지금까지의 상징을 해석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제법 난해한 상징과 직면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럴 때 우리에게 도움을 베푸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채색옷의 의미를 추측하도록 우리 자신의 상상력에만 남겨 두지 않으셨다. 결코 그렇지 않다. 추측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된 말씀과 관련하여 무익할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불필요하다.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 💕 사사기 5:30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는다.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 놓은 채색옷이로다 곧 양쪽에 수 놓은 채색 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4. 그의 아버지의 사랑.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이것은 요셉과 관련한 그림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야곱은 특별히 요셉을 사랑했다. 그가 요셉을 위해 채색옷을 지어 준 것, 요셉이 악한 짐승에게 먹혔다고 생각하며너 위로받기를 거절하고 슬퍼한 것, 죽기 전에 사랑하는 아들을 보겠노라고 애굽까지의 먼 여행을 마다하지 않은 것 - 이 모든 것이 요셉에 대한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말해 준다. 이것은 우리에게 자기의 독생자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말해 주지 않는가? 솔로몬을 통해 예언의 영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존재하는 영원한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
우리가 구약 성경을 주의 깊게 읽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거기에서 하나님이 다양한 방법으로 그 아들의 강림을 위한 길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연구는 단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다. 곳곳에 신적 성육신과 주 예수의 생애와 죽음이 예표적으로 나타나며, 우리는 바로 거기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켜야 한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방법들 가운데 다양한 사람들의 역사(歷史)가 있다. 💕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품이 나타나도록 하셨다. 이와 같이 아담은 그리스도의 머리됨(Headship)을 나타냈으며, 아벨은 그의 죽음을 나타냈으며, 멜기세덱은 그를 제사장으로 가리켰으며, 모세는 그를 선지자로 가리켰으며, 다윗은 그를 왕으로 가리켰다. 그러..
야곱과 관련하여 이야기한 첫 번째 장(즉 본장 제29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각각의 족장들이 특정한 영적 진리들을 예증(例證)으로 나타내는 사실과 그들의 삶의 연대기적인 순서가 진리의 교리적인 순서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아브라함 안에서 우리는 선택의 교리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그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모든 이방인들로부터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또 이삭에서 우리는 신적 아들됨(divine sonship)의 교리가 예표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아브람의 장자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낳은 사람, 즉 옛 본성을 상징한다. 즉 영적 본성을 상징한다. 또 야곱에게서 우리는 신자 안에 있는 두 본성 사이의 싸움과 영으로 하여금 육을 이기도록 이끄는 하나님..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창 49:27). 이것 역시 성경의 신적 영감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두드러진 증거이다. 만일 야곱 자신에게만 남겨졌다면, 틀림없이 그는 사랑하는 막내아들 베냐민에 대해 이와 같이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명백하게 보여 주는 것처럼, 여기의 예언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여기에서 베냐민은 "이리"와 연결된다. 이리는 재빠름과 사나움으로 특징지어지는 동물이다. 베냐민은 열두 지파 가운데 가장 사납고 호전적이었다. 그것의 실례(實例)를 위해서는 사사기 19:16, 사무엘하 2:15-16, 역대상 8:40, 12:2, 역대하 17:17 등을 참조하라. 그 가운데 특별히 사무엘하 2:15-16을 보기로 하자. "그..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창 49:22-26). 요셉에 대한 예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22절부터 24절까지는 뒤를 돌아보며, 25절부터 26절까지는 앞을 ..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창 49:21). 납달리는 "씨름"을 의미한다(창 30:8을 보라).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야곱은 납달리가 마치 사냥꾼들에 의해 에워싸여 붙잡혔다가 겨우 그들의 올무로부터 벗어난 암사슴과 같다고 말한다.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 될 것이었다. 이러한 표현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히브리어에서 그 단어는 첫째로 "쫓긴"(sent)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신의 은신처로부터 쫓긴 사슴이 그곳으로부터 뛰쳐나가는 것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 단어는 또한 "풀려난" 혹은 "가게 함을 받은" 을 의미한다. 그것은 노아가 방주로부터 까마귀와 비둘기를 "보낼" 때 사용된 단어이다. 그 단어는 사냥꾼에게 붙잡혔다가 자유를 되찾은 동물의 기쁨을 표현한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