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159)
En Hakkore
"아셀에게는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창 49:20). 스불론과 납달리와 잇사갈과 함께, 아셀의 자손들은 팔레스타인 북쪽에 정착했다. 그곳은 전체적으로 "이방의 갈릴리" 라고 불리는 지역이었다. 그러한 이름은 특별히 아셀 지파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 지파는 절반이 이방인이 지파였기 때문이었다. 아셀의 영토는 팔레스타인 최북단 즉 레바논 산으로부터 지중해 사이에 걸쳐 있었으며, 그 경계 안에 두로와 시돈 등의 고대의 유명한 도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수 19:24-31을 보라). 이 지파의 영토는 "종려나무의 땅"을 의미하는 "베니게"(Phoenicia)라는 그리스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그곳에 그와 같은 이름이 붙여진 것은 거기에 번성한 종려나무들이 매..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창 49:19). 여기에서 "군대"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갑자기 습격하여 약탈하는 무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과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가 열왕기하 5:2에서 "때"로 번역되는 것을 발견한다.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또 같은 단어는 열왕기하 24:2에서 "부대"로 번역된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양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그러므로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라는 야곱의 말은 패배를 승리로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불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창 49:16-18). 우리는 단 지파에 대한 야곱의 예언을 신명기 33:22에 기록된 모세의 예언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 두 사람 모두 단 지파의 악에 대해 예언한 것으로 보인다. 성경이 단에 대해 기록하는 첫 번째 사실은 그의 비천한 탄생이다(창 3:1-6을 보라). 다음으로 우리는 창세기 37:2에서 그를 보게 된다. 비록 그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창 49:13). 아들들을 축복하는 가운데, 여기에서 야곱은 넷째 아들로부터 곧바로 열째 아들로 넘어간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에 불완전한 것은 없다. 성경의 모든 부분이 완전하다. 성경의 모든 단어들이 신적으로 영감되었을 뿐만 아니라, 단어들의 배열과 배치까지도 그것이 성령의 역사(役事)임을 증명한다. 💕 하나님은 질서(order)의 하나님이시다.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의 모든 말씀 속에서 그것(order)을 발견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야곱은 넷째 아들 유다를 축복할 때 육체를 따라 그 지파로부터 오게 될 그리스도 자신을 내다보았다. 한편 우리 주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스불론 땅과..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내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창 49:-12). 유다에 대한 야곱의 예언은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성취된다.♡ 그것은 역대상 5:2..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 49:5-7). 이러한 말씀은 성경의 신적 영감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모세 스스로에게만 남겨졌다면, 그는 틀림없이 이 부분의 예언을 빠뜨렸을 것이다. 그 자신이 레위 지파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시므온과 레위는 한 묶음으로 "폭력의 도구" 로 일컬어진다. 두말할 것도 없이 역사적(歷史的)으로 이것은 창세기 34:25과 연결된다. ..
마침내 우리는 야곱의 생애 가운데 마지막 장면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에서 우리는 야곱 위에 비치는 하늘의 빛을 보았지만, 너무나 자주 그것은 땅의 구름에 의해 가려졌다. 그 안에서 영과 육의 싸움이 오랫동안 격렬하게 펼쳐졌다. 그러나 말년으로 갈수록 은혜의 승리와 세상을 이긴 믿음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분명해졌다.♡ 이것이 창세기 49장의 장면보다 더 분명하게 나타나는 곳은 결코 없다. 오래 전에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 약속은 이삭에게 재확인되었으며, 야곱에게 또 다시 재확인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약속이 성취될 것을 나타내는 어떤 증표도 없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가나안 땅에서 단지 "외인과 나그네"일 뿐이었다. 그들은 죽은 자를 묻기 위한 매장지 ..
히브리서 11:21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라는 말씀을 읽는다. 여기에서 성령께서 야곱의 생애에 있어서의 연약한 부분들은 그냥 지나치면서 그의 말년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곧바로 직행하는 것을 주목하라. 여기에서 야곱의 믿음으로서 그의 두 가지 행동이 선택된다. 전자는 창세기 48장에 기록된 행동이며, 후자는 창세기 47:31에 기록된 행동이다. 지금 나는 히브리서 기자가 창세기에 나타나는 순서를 바꾼 이유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자 한다. 다만 그가 제시하는 두 가지 믿음의 행동만을 창세기에 나타나는 순서대로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이스라엘의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애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