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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26] 브니엘에서의 야곱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126] 브니엘에서의 야곱

En Hakkore 2024. 3. 21. 11:16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25절).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쉽게 야곱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그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실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단지 "허벅지 관절을 건드리는(touch)" 것뿐이었다(한글개역개정판에는 "허벅지 관절을 치매"라고 되어 있음).

이로써 한 순간에 야곱의 모든 힘은 사라지고 말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사건의 비밀을 여는 두 번째 열쇠를 발견한다. 야곱이 가진 모든 자원은 이제 다 없어졌다. 하나님의 손이 한 번 살짝 건드리는 것으로 그는 완전히 무력해졌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다루심의 목적이다.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가운데 때로 우리에게 시험과 시련과 연단을 허락하는 하나님의 주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무력함과 아무것도 아님을 보이시고 우리가 육체를 신뢰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약함을 깨닫는 것에서 그의 강함이 온전하게 나타나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26절).

여기에 이 사건의 비밀을 푸는 세 번째 열쇠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신비한 방문자의 목적이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된다. 야곱은 이제 더 이상 씨름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붙잡고 늘어지는 것뿐이었다.

야곱은 자신의 체중 전체로 그를 붙잡고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신비한 방문자는 바로 그 지점까지 야곱을 데려갔다. 그러나 이제 그는 "홀로 남았다." 그는 이제 완전히 무력한 존재가 되었다.

신비한 방문자는 그의 힘이 나오는 곳을 건드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당신을 가게 하지 않겠나이다. 이제 나에게 다른 피난처는 없나이다. 나는 이제 완전히 무력하나이다. 오직 당신을 붙잡고 늘어질뿐이나이다" 라고 말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빼앗는 자" 야곱의 역사(歷史)에 새로운 기원이 열리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수단과 방법을 굳게 붙잡았다. 그러나 이제는 "당신을 가게 하지 않겠나이다" 라고 말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그의 허벅지 관절이 건드려진" 이후였음을 주목하라.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자신의 무력함과 아무것도 아님을 충분히 깨닫고 난 연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붙잡고 늘어지며 그의 복을 찾는다. 여기에서 야곱이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라고 말한 것을 주목하라.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27, 28절).

나는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여기의 말씀을 오해했다고 느낀다. 여기의 신적 방문자가 야곱의 이름을 물은 이유가 무엇이었겠나? 그의 양심에 "빼앗는 자" 라는 그의 이름의 의미를 강조하며 각인시키려는 것이 아니었겠나? 야곱은 새 이름을 받는 것에서 책망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설령 새 이름의 의미가 여기의 사건의 중심적인 교훈을 잘 요약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면 그의 새 이름인 "이스라엘"의 의미는 무엇인가? 개정역(Revised Version)은 난외(欄外)에서 "하나님이 겨루신다"(God striveth)라는 독법(讀法)을 제시한다.

나는 이것이 올바른 개념을 전달한다고 믿는다. 설령 "하나님이 명령하신다"(God commandeth)라는 흠정역의 독법이 좀 더 어울리는 대안일 수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어쨌든 일단은 흠정역의 독법을 그대로 따르기로 하자.

한 저명한 히브리어 학자는 "엘"과 합성된 이름은 거의 예외 없이 "야"(Jah)와 합성된 40여개의 이름에서, 하나님은 항상 주격의 행위자로서 나타난다. 예컨대 히엘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를 의미하며, 다니엘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를 의미하며, 가브리엘은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다"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명령하신다"를 의미한다. 이러한 이름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중심이었으며 장차 중심이 될 나라의 이름으로서 가장 적합한 이름이 아닌가! 이스라엘 - "하나님이 명령하신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통치자로서 힘을 가지고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28절, 한글개역개정판에는 "통치자로서 힘을 가지고"가 없음).

"통치자로서"(as a prince) - 이것은 그를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책망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힘을 가지고"(hast thou power) -여기에 사용된 단어의 히브리어 어원은 "반역" "배반" 등으로 번역된다.

그는 어머니 복중에 있을 때 에서와 더불어 다투었으며, 그리하여 "야곱"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치하는 자로서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더불어" 다투었으며, 그리고 "이겼다."

컴패니언 바이블(Companion Bible)로부터 인용해 보도록 하자.

"그는 장자권을 위해 다투었고, 이겼다(창 25:29-34). 그는 '사람들'과 더불어 다투었고, 이겼다. 그는 지금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다투었고, 졌다. 그리하여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하나님이 명령하신다')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그에게 하나님을 의지(依支)해야 한다는 위대한 교훈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

야곱은 형 에서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장황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를 대신하여 모든 일을 준비하실 것이었다. 이러한 교훈을 배우기 위해 그는 낮아져야만 했다. 자신의 힘에 대해 그는 절름발이가 되어야만 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은 그에게 지금 그가 배운 것을 항상 일깨워 줄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치하며 움직이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었다. 이제부터 그의 이름은 이스라엘 즉 "하나님이 명령하신다" 가 될 것이었다. 야곱으로서, 그는 "이겼다". 그러나 이제부터 이스라엘으로서,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이기실 것이었다.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