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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25] 브니엘에서의 야곱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125] 브니엘에서의 야곱

En Hakkore 2024. 3. 21. 11:16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밤에 일어나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32:21-24).

우리는 여기에서 야곱의 생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기의 순간을 보게 된다. 창세기는 야곱을 두 가지 모습으로 제시한다. 이를테면 하나는 야곱의 모습으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모습으로 말이다. 전자는 자연적인 사람이며, 후자는 영적인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공식적으로 받게 되는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빼앗는 자"라는 이름을 가졌던 자는 이제 "하나님이 명령하시다" 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야곱이 공식적으로 새 이름을 받게 되는 이야기는 정말로 우리가 최고의 주의를 기울여 살펴볼 만한 이야기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극도의 혼란과 두려움 속에 빠져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밧단아람에서 그토록 힘들게 수고하여 얻은 모든 것이 그의 손으로부터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와 그의 아내들과 그의 자식들의 목숨이 절박한 위험 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가족들이 먼저 얍복 나루를 건너게 했다. 이제 그는 홀로 남았다. 갑자기 한 신비한 사람이 나타났으며, 그는 어둠 속에서 야곱과 씨름했다. 그리고 씨름은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24 상반절).

이 문장 속에 지금 우리가 살피고 있는 사건의 비밀을 여는 첫 번째 열쇠가 숨겨져 있다. 이러한 말씀과 관련하여 한 설교자는 이렇게 논평한다.

"하나님과 함께 홀로 남는 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해 제대로 보고 알게 되는 유일한 길이다. 성소(聖所)의 저울에 달아볼 때까지,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의 본성에 대한 올바른 평가에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또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오직 우리가 '홀로 남아 있을' 때만 얻을 수 있다. 자기로부터 떠나고, 세상으로부터 떠나고, 본성의 모든 생각과 판단과 상상과 추론으로부터 떠나 오직 '하나님과 홀로 남아 있을' 때- 오직 이 때에만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C. H. M.) 💕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24 하반절).

호세아 12:4에서 이 "사람"은 "천사"로 일컬어진다.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다시 말해서 우리는 그를 "언약의 천사"(the Anger of the Covenant), 혹은 다른 말로 주 예수 자신의 현현으로 취할 수 있다. 그는 소돔이 멸망하기 직전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자와 동일한 자였다.

창세기 18:2에서 우리는 "세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다는 말씀을 읽는다. 그러나 뒤에서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여호와"로 일컬어진다(13절). 그와 같이 여기 창세기 32장에서도, 야곱은 그 "사람"과의 씨름 막바지에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라고 말하면서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불렀다(30절)

"어떤 사람이 ... 야곱과 씨름하다가."

본문은 야곱이 어떤 신비한 방문자와 씨름했다고 말하지 않고, 어떤 사람이 야곱과 씨름했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성도의 기도의 능력을 보여 주는 예화로 종종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그러한 개념은 과녁을 다소 빗나가는 개념이다. 야곱이 복을 얻기 위해 그 사람과 씨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그 사람이 야곱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그와 씨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야곱으로 하여금 자신이 가련하며, 무력하며, 무가치하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의 야곱으로부터 "우리의 약함을 깨닫는 바로 거기에 우리의 강함이 있다"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만 한다. 💕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새벽이 될 때까지 신비한 씨름은 계속되었다. 앞에서 내가 이야기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만일 하나님이 야곱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기 위해 그와 씨름하고 계셨던 것이라면 하나님은 굳이 날이 샐 때까지 길게 씨름할 필요 없이 한 순간에 당신의 목적을 이루셨을 것" 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신다."

또 하나님은 종종 우리와 더불어 오랜 시간 씨름하면서 마침내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곤 하신다. 그리고 이와 같이 오랜 시간 씨름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오래 참으심을 나타내신다.

■ 얍복은 "비움"을 의미한다. 이것이 얼마나 적절한 이름인가! 왜냐하면 그것은 야곱이 "홀로 남은" 사실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