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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잘못을 범한 형제를 돕는 일 (마 7:5) 우리는 자발적으로나 고의적으로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생활에서 우리가 여전히 사랑하고 소중히 아끼는 것을 물리치지 못할 것이 분명하므로, 우리의 정욕과 죄로 물든 마음이 감화를 받아서 그것들을 슬퍼하고 미워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그 반대의 상태는 영혼의 두려운 죽음과 죄 가운데에서의 방심인데, 그 죄 가운데에서의 방심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분명히 그것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지극히 두려운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사실에 대한 증거는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의 경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마 24:39)고 말씀하셨다. 즉 그들은 자기들의 육욕과 광기를 의식하고 있다..
잘못을 범한 형제를 돕는 일(마 7:5)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라는 말씀은 네 자신과의 관계에 충실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용서 없이 비판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물리치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비판하는 병을 앓은 자에게 훌륭한 치료약이 되는데, 왜냐하면 당신이 잘못을 범한 당신의 형제에게 진심으로 어떤 도움이 되고자 한다면 그것이 제일 먼저 요구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있는 어떠한 결점을 슬퍼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극악한 욕망에 빠진 자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일 뿐 아니라(오만과 위선으로 인해서) 거의 전적으로 영적으로 알지 못하는 자는 자기 형제의 눈에서 티를 제거해 주는 어렵고도, 고상한 일을 절..
잘못을 범한 형제를 돕는 일(마 7:5) 그러므로 마태복음 7장에서의 그리스도의 교훈에는 레위기 19:17과 반대되는 것이 조금도 없으며, 오히려 빛을 던져 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서 형제에게 권고하는 행위를 금하신 것이 아니라 그릇된 방법으로 그것을 행하는 것을 금하신 것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라는 구절에서 분명히 입증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적당한 때의 한 뜸에 해당한다" 라는 옛 말이 실제로 입증될 것 같은 사람의 경우에 우리가 참으로 도움이 되고자 한다면 우리가 꼭 따라야 할 과정을 공표하고 계신다. 즉 사람의 잘못을 고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은 더욱더..
잘못을 범한 형제를 돕는 일(마 7:5) 19세기 말의 많은 목사의 '성경교사'들이 범한 지극히 큰 실수들 중의 하나는,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 앞에 지금도 만연되어 있는 끔찍한 결과이다. 그것은 바로,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지 못한 율법의 엄격한 제도의 지배 하에 있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그 가혹한 제도를 폐기하고 한층 더 관대한 시대(경륜)를 열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고 하는 그들의 관념이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 이곳에 오셨다(사 42:21). 그 율법은 변명이나 수정도 필요치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며 신령하기" 때문이다(롬 7:12, 14). 율법의 대강령은 우리가 ..
잘못을 범한 형제를 돕는 일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는 행동의 규율은 어떤 일들을 금지하고 있음과 동시에 일련의 소극적인 금지 명령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즉 그것은 또한 적극적인 행동 방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범죄를 방지하는 것도 좋지만 실제적인 거룩을 추진시키는 것은 훨씬 더 좋은 일이며, 범죄를 방지하는 일은 실제적인 거룩을 추진시키는 것이 된다. 포도나무 가지가 병충해와 독충을 막았다고 해서 그것이 포도나무 가지에 충분한 것만은 아니다. 그 가지들은 그 자체에 생명력이 있음을 나타내 보이려면 열매를 맺어야..
비판하지 말라 (마 7:2-4)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대개의 주석가들은 여기에서의 '형제' 라는 말이 단지 '이웃'을 의미한다는 견해를 취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주님께서 참으로 중생한 자를 가리켜 '외식하는 자' 라고 하셨다는 것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좀 난해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5절에 가서 그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우리는 현재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을 고찰하고 있는데, 그 상황으로부터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눈'이라는 것은(영적으로 중생한 자의 경우에) 전혀 보지 못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경우에 우리 주님께서 사용하신 상징을 통해서 '눈'(영적 통찰력의 지식이나 능력)은 티끌이 들어감으로 인해서 일시적으로 해..
비판하지 말라 (마 7:2-4)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3,4절). 이 구절은 우리의 형제들에게 불법적으로 비난하는 것을 제지하시는 두 번째 충고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가 있다. 즉 그 자신이 훨씬 더 큰 범죄자가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이 있거나 거기에 합당한 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은 너무도 명백한 것이기 때문에 이 사실에 대해서 그것을 설명할 필요도 없고 더욱이 그것을 권고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죄로 말미암아 지극히 타락한 상태..
비판하지 말라 (마 7:2-4) 9절에서 11절 사이에 확언되어 있는 내용을 통하여 사도는 시기에 알맞는 권고를 제시해 주고 있는데, 오늘날 사람들이 그것을 생각하고 믿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 될 것이다. 즉 주님의 백성은 머지않아 율법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의 그들의 인생을 관리하도록 요구받고 있으며, 만일 그들이 그때에 율법의 시험을 통과하고자 한다면 다가올 그날의 빛 가운데에서 말하고 행동을 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은 율법과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젠가는 그의 행동이 율법의 요구를 얼마만큼 만족시켰는가에 대해서 그 율법으로 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신자들이 행위의 계약으로서의 율법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할지라도 율법은 여전히 그들의 행동의 규율이 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