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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209]

En Hakkore 2024. 7. 27. 15:12

비판하지 말라 (마 7:2-4)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3,4절).

이 구절은 우리의 형제들에게 불법적으로 비난하는 것을 제지하시는 두 번째 충고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가 있다.

즉 그 자신이 훨씬 더 큰 범죄자가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이 있거나 거기에 합당한 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은 너무도 명백한 것이기 때문에 이 사실에 대해서 그것을 설명할 필요도 없고 더욱이 그것을 권고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죄로 말미암아 지극히 타락한 상태에 있고 바리새인의 흉내를 내기 쉽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에 의하여 입증되고 있으므로, 우리는 참으로 거기에 대해서 경고를 받을 필요가 있으며 그 경고에 대해 진지하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본성의 타락을 조심하지 아니하며, 부패에 빠지지 않으려 하고 이 비난할 만하고 타락한 형태의 죄에서 빠져 나오려고 끊임없이 경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여기에서 비난하셨던 바로 그러한 종류의 위선의 죄가 있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 만일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며 부지런히 우리 자신을 시험해 보았다면 우리들 중 어느 한 사람도 정직하게 이 죄와는 상관 없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비유로 하신 이 말씀에서,
첫째로, 죄는 보이지 않는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은 중생하지 않은 자에게서 아주 분명하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무서운 상황을 보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죄와 잘못을 찾아내는 데에는 빠르기 때문이다.

또한 신자들도  중생했다고 해서 이 사악한 풍조에서 자유롭게 되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죄가 여전히 그 속에 들어 있고 그가 자신을 용서 없이 비판하지 못하는 것과는 반비례로 그는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이 상징적인 말씀에서 죄에는 여러가지 등급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것을 비난하실 때와 마찬가지로(마 23:24) '티'와 '대들보' 라고 하는 데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모든 죄가 다 사소한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크신 하나님을 거역한 것에 사소한 죄란 있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범죄들 가운데에는 극악한 정도에 따라 여러가지 등급이 있는데, 이것은 마태복음 11:23, 24; 요한복음 19:11; 히브리서 10:29에서 입증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욕망에 굴복하는 자와, 어떤 결함이나 작은 범죄에 대해서 감히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자 사이에 대조가 되는 것을 지적하고 계신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느냐?" 라는 질문과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고 하신 우리 주님의 질문에는 너는

"어떤 얼굴로, 무슨 염치로 그와 같이 행동할 수가 있느냐? 너는 어떠한 근거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검사하는 자요 비판하는 자처럼 행세하느냐? 그러한 진행과정은 선한 양심에서 나오는 것이냐?" 와 같은 진의가 담겨 있다."

여기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행동과 말은 물론 바로 우리의 생각까지도 선한 동기를 바탕으로, 그리고 타당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말해야만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신다.♡

전도서 5:1,2에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집에서 경솔하게 말하거나 정당하게 고려되지도 않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금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형제들과 관련이 있는 우리 마음의 모든 생각과 우리 입술의 모든 말에 이 규칙을 적용시키고 계신다.

왜냐하면 여기에서의 '형제'라는 말은 믿음의 권속 중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훈계를 더욱더 엄숙하고 엄중하게 만들고 있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나 자매에게 부당한 취급을 하는 것은 세상 사람에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형제를 해칠 때에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를 박해하는 것이 된다(행 9:1, 4).

Arthur W. Pink 산상수훈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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