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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211]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211]

En Hakkore 2024. 7. 27. 15:13

잘못을 범한 형제를 돕는 일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는 행동의 규율은 어떤 일들을 금지하고 있음과 동시에 일련의 소극적인 금지 명령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즉 그것은 또한 적극적인 행동 방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범죄를 방지하는 것도 좋지만 실제적인 거룩을 추진시키는 것은 훨씬 더 좋은 일이며, 범죄를 방지하는 일은 실제적인 거룩을 추진시키는 것이 된다.

포도나무 가지가 병충해와 독충을 막았다고 해서 그것이 포도나무 가지에 충분한 것만은 아니다. 그 가지들은 그 자체에 생명력이 있음을 나타내 보이려면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 밭이 잡초가 막았다고 해서 할 일을 다한 것은 아니다.

밭이 그 소유주에게 도움이 되려면 밭은 싱싱한 채소를 많이 내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악에게 지지 말라"는 것은 그에게 주어진 의무의 첫 번째 일이며,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은 우리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말씀이다(롬 12:21).♡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참으로 자주 가르쳐 주고 있는 이 중요한 원리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구절에서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단지 우리가 부당하게 우리 형제들을 비판하는 사악한 습관을 정죄하시기 위하여 갑자기 멈추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필요한 교훈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그리고 특히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계신 것이다.

마태복음 7장의 서두에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통하여 우리가 형제에게 훈계하거나 그의 잘못을 고쳐 주고자 하는 일이 우리에게 허용되어 있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기가 쉬운데, 좀 더 깊히 생각해 보면 그러한 추론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고 분명하게 경고하셨다.

즉 율법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도록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영감을 줌으로 말미암아(롬 3:31; 7:22) 그의 중보적이고 대속적인 사역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교훈에서 그것을 완전하게 하려 하셨다.

그런데 율법은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레 19:17) 명하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교훈에 그 규율을 무시하는 어떤 것이 있다고는 잠시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도덕법과 복음 사이에는 전혀 갈등이 없고 오히려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실로 그러하다. 그것은 도덕법의 창시자가 또한 복음의 창시자이시고, 또한 그는 "변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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