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7/22 (14)
En Hakkore
하나님을 섬기는 일(마 6:24) 더욱이 우리 본문을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대단히 분명해진다. 즉 만일 우리가 기꺼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면 그 예배는 전심을 다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며 어떤 대적자도 용납하시지 않는 분이시다.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며 우리 영혼의 밀실에 있는 어떤 우상도 참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의 요구는 명백한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어느 것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디. 주 예수께서 마태복음 22:37에서 같은 내용을 주장하신 것을 주목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순전해야 된다. 하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마 6:24)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맘몬(재물)이란 아람어인데 '부' 라는 뜻이다. 혹은 사람들이 일컫듯이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의인화시킨 뜻으로 사용된 것이 분명이다. 왜냐하면 생명이 없는 것을 섬긴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사용한 표현은 '두 주인'에 대한 상징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맘몬(재물)이란 하나님과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이 부의 신, 세상의 왕, 그리고 세상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말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이 세상의 보물과 쾌락을 뜻하는 것인데 그것은 진정 사탄을 숭배하는 일이다.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면 두 신을 섬기는 것은 얼마나 더 불가능하..
하나님을 섬기는 일(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주님께서 선포하신 뜻은 영어에서 보다는 헬라어에서 더 분명하다. 첫째로, '섬긴다' 는 말로 이따금씩 복종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며 노예요 주인의 소유물이며 하나님의 뜻에 항구적이고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와 똑같은 뜻의 헬라어가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그것은 또한 다음에서도 발견된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행위계약으로서의]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
하나님을 섬기는 일(마 6:24) 우리 주님께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유대인 청중에게 강론하시고, 하늘나라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책망하신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 번 기억해야만 하겠다. 그들은 장래에 메시야가 통치하시는 나라에서 누릴 행복에 대하여 어떤 막연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적인 번영을 기대하는 것과 영적인 행복은 서로 대단히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들의 마음은 현세적인 번영을 꿈꾸는데 주로 골몰하고 있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알려주셨다. 그들은 이것을 '회개' 하고 또한 근본적으로 마음을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명상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오직 유대인뿐만이 아니다. 이방인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시대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은 세..
하나님을 섬기는 일(마 6:24) 이 시리즈의 지난 몇 장을 주의 깊게 읽어온 독자에게는 이 구절과 문맥의 관계를 지적할 필요가 없겠다. 그 관계는 한 눈으로 보아서도 거의 분명하다. 이 부분의 설교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귀중한 것과 무가치한 것 사이를 구별하시고, 참된 것과 거짓된 것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을 그으셨다. 그는 두 종류의 숭배자, 즉 진실한 자와 외식하는 자 사이를 구별하셨다. 그는 두 종류의 보물, 즉 지상적인 것과 천상적인 것 사이를 구별하셨다. 그는 두 종류의 눈 혹은 지혜, 다시 말하면 성한 눈과 나쁜 눈 사이를 구별하셨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대조시킴으로써 두 주인을 대립시켰다.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신다. 즉 ..
성한 눈 2(마 6:22, 23)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23절). 이 말씀은 말할 수 없이 엄숙하다. '네게 있는 빛' 이란 본성의 빛이며, 사람이 본래적으로 부여받은 도덕적이며 지적인 지각의 잔재를 말한다. 그것은 비록 타락으로 인해 크게 흐려지고 더렵혀지긴 했지만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며, 선과 악에 대한 분별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무신론자나 가장 육욕에 빠진 비열한 자일지라도 여전히 그들 안에 약간의 양심의 활동은 남아 있으며,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께 의무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남아 있는 '빛' 이 억눌려지거나 그것을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된다면, 그 빛이 비추는 것이 계속하여 방해받고 양심의..
성한 눈 2(마 6:22, 23)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마음의 상태에 있어서 세상의 길이 참으로 악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도처에서 우리는 나쁜 눈에 아주 만족하는 자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을 사랑하고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외적으로 승인하는 자들조차도 그것을 전혀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겨우 본래의 빛, 타락 아래로 그들에게 남겨진 지성의 찌꺼기만을 지니고 있을 따름이다. 그들은 여전히 영적인 어둠가운데 있으며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엡 2:12)이다. 그들의 생활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시지 않는 한, 멀지 않아 "흑암 중에 던져질" 것이다...
성한 눈 2(마 6:22-23) 자연인의 우매함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우둔한 무지에서 뿐만 아니라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에서도 드러난다. 그의 마음은 전적으로 영적인 분별력을 결여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분명하다. 거듭나지 않은 자는 그의 식별력이 의존하는 무시무시한 어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는 틀림없는 바보들이다. 즉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다"(롬 3:17). 진정으로 성령에 의해 일깨워졌을 때에 그들은 이를 알아차린다, 그때 그들은 부르짖는다. "구원받기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라고 자연인은 자기 자신의 죄들을 바르게 분별할 수도, 그 죄의 수치스러움을 깨달을 수도 없을 만큼 그렇게 무분별하다.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