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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151]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51]

En Hakkore 2024. 7. 22. 21:21

성한 눈 2(마 6:22, 23)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23절).

이 말씀은 말할 수 없이 엄숙하다. '네게 있는 빛' 이란 본성의 빛이며, 사람이 본래적으로 부여받은 도덕적이며 지적인 지각의 잔재를 말한다.

그것은 비록 타락으로 인해 크게 흐려지고 더렵혀지긴 했지만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며, 선과 악에 대한 분별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무신론자나 가장 육욕에 빠진 비열한 자일지라도 여전히 그들 안에 약간의 양심의 활동은 남아 있으며,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께 의무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남아 있는 '빛' 이 억눌려지거나 그것을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된다면, 그 빛이 비추는 것이 계속하여 방해받고 양심의 소리가 서서히 잠잠하여진다면, 그리하여 하나님이 부인되고, 그의 말씀은 하나님의 계시임이 거부되기에 이른다면, 그때에는 그 '빛' 이 '어둠' 이 되며 그는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은 마음으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그럴 때 "그 어둠이 얼마나 크겠는가." 즉 양심의 가책도 없이 게걸스럽게 죄를 범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생활은 오직 야만적인 혼돈과 극악한 행동들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므로 내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이 말씀은 또한 종교적인 오류에 미혹되거나 광신에 빠진 자들에게도 올바르게 적용된다.

사람들이 자신은 특별하게 빛의 조명을 받아 왔다고 생각할 때, 하늘로부터 성경의 기준에 어긋나는 어떤 소리나 환상, 혹은 어떤 공상적인 '성령 세례' 를 받았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이 특별한 빛 안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들을 성경으로부터 분리시킬 때,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끝으로,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건전한 목회자 아래 있던 자들에게 더욱 엄격하게 적용된다.

그들의 마음에 비춰진 진리의 빛이 저항을 받고, 성령이 억눌러질 뿐이라면 그들의 어둠이 얼마나 크겠는가!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벧후 2:20).

그리하여 만일 본성이 바로 그 빛이 발휘되고, 복음의 빛이 우리에게서 억눌러진다면, 우리는 참으로 진지하게 자신들의 추억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들 안에, 저지되거나 억눌러지지 않는 한 분명히 우리를 영원히 캄캄한 암흑에 빠지게 할 그러한 야만적인 정욕과 무서운 갈망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참으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의 타락한 욕망들과 제멋대로 구는 감정들을 억제하도록 권고받는다.

타락 전에는 마음의 의지와 감정을 통제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들 열등한 기능들이 마음을 지배하며, 그리하여 그것들이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여 어리석게 만든다.

우리의 유일한 대책은 자신의 잘못된 의지와 타락한 욕망을 거부하고, 그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도록 애쓰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히 3:12)라고 권고하신 말씀에 진정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교훈에 따라서 행할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하며,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게 되도록 간구하자.♡

Arthur W. Pink 산상수훈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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