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3/03 (15)
En Hakkore
후새의 반대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번에는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이 좋지 아니하니이다 하고"(삼하 17:7). 후새는 심각한 시험에 빠졌다. 첫째, 압살롬은 후새가 처음으로 자기에게 모습을 보였을 때 이미 그의 충성에 대해 얼마간 의심을 표명한 바 있었다(16:17). 둘째, 이미 아히도벨이 모든 이들에게 찬성을 얻은 계획을 제안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셋째, 아히도벨의 계획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압살롬의 의심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주장을 고집했고, 자신을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다윗을 이롭게 하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는 앞으로 나서서 담대하게 자기의 라이벌의 계획에 대해 도전했다. 그러나 그는 신중하게 "이번에는"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공격의..
후새의 의견을 묻는 압살롬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매 압살롬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히도벨이 이러이러하게 말하니 우리가 그 말대로 행하랴 그렇지 아니하거든 너는 말하라 하니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번에는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이 좋지 아니하니이다 하고"(삼하 17:5-6). 우리는 "그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삼하 16:23)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압살롬이 즉각 그의 조언을 따라 행동하지 않고 후새의 의견을 구했던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것은 아히도벨이 제안한 계획을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을 옳게 여겼던 것"(삼하 17:4)을 감안한다..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계획을 이루시면서, 자신의 백성들의 영적이고 일시적인 필요들을 채워 주시면서, 그리고 그 백성들을 그들의 적들로부터 구해 내시면서 자신이 원하시는 바에 따라 대리인들을 사용하기도 하시고 또는 그들의 도움 없이 행동하기도 하신다.🧡 그분이 이런저런 수단들에 구애받지 않으신다는 것은, 그분이 광야에서 이백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떡을 제공하시면서 사십 년 동안이나 그들을 먹이신 일과, 성경에 기록된 또 다른 중요한 사건들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대개 그분은 자신의 영원한 섭리를 이루시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수단들을 사용하기를 기뻐하신다. 때론 그 수단들은 연약한 자들, 즉 자기들이 의도하는 목표를 이루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자들일 경우가 있다..
하나님의 개입 "압살롬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도 부르라 우리가 이제 그의 말도 듣자 하니라"(삼하 17:5). 이것은 아주 놀랍다. 앞에서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사악한 조언을 즉각 따랐다(16:22). 그런데 어째서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인가? 그는 그 제안을 옳게 여겼다(4절). 그럼에도 그는 머뭇거렸고 다윗의 숨은 친구였던 후새에게 조언을 구했다. 후새가 먼저 움직여 자신을 내세웠던 게 아니었다. 압살롬이 먼저 나서서 그의 의견을 구했다. 이것은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 21:1)라는 말씀에 대한 얼마나 확실한 증거인가! "주께서 이미 압살롬이 재앙을 당하게 하시려고,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좌절시키셨다"(삼하 17:14, 표준새번..
아히도벨의 계략 앞 장에서 이미 우리는 사무엘하 16장 말미에 기록되어 있는 몸서리나는 사건(16:20-22 참고)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그것에 대해 아주 짧게 서술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계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하니"(삼하 16:20). 첫째, 우리는 압살롬이 언약궤-다윗은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다-를 수종하는 자들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은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여호와의 뜻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의 삶 전체를 통해 이교도로서 그리고 뻔뻔스러운 반역자로서 행동했을 뿐이다. 둘째,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그토록 악하게 행동하게 하면서 품었던 분명한 의도는-매튜 헨리는 이때 그가 "하나님께"(삼하 16:23)가 아니라 "사탄의..
후새의 위장 침투 "왕과 그와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피곤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삼하 16:14). 이 구절에 나오는 "거기"는 "바후림"(5절)이었다. 다윗과 그의 소수의 추종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난 후 길고 험난한 여행을 거쳐 겨우 캠프를 마련하고 아주 긴요한 휴식을 취했다. 그와 동시에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이르고 아히도벨도 그와 함께 이르렀다"(15절). 이것은 다윗과 그의 수행원들이 압살롬이 언제라도 왕도(王道)를 차지하도록 길을 활짝 열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를 가로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그는 예루살렘으로 왔고, 의심할 바 없이 자신이 거둔 그 최초의 성공 때문에 의기양양해져서 이제 곧 온 나라가 자신의 것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사악한 ..
이어지는 장들에서 우리는 점차 어두워져가는 장면 한 가운데서 때로 그 장면 위에 그늘을 지우는 어둠을 뚫고 몇 줄기의 햇갈이 비춰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이후의 내용은 주로 다윗의 적들의 행동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때로 이곳저곳에서 우리는 다윗의 친구들의 친절한 행동들을 발견한다. 타락한 인간의 부패가 거듭해서 제시된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의 무도함이 위로부터 오는 능력에 의해 즉각 제어되지 않을 경우 얼마나 무서울 만큼 깊어질 수 있는지 보게 된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마귀가 불순종한 자녀들 안에서 자유롭게 역사하도록 허락하신다(엡 2:2). 왜냐하면 처음부터 인간은 고의적으로 창조주께 충성하기보다는 마귀의 권세에 굴복하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생명보다 죽음을 그리고 자유보다 속박을 좋아하는 ..
징계에 대한 순응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이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 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삼하 16:9-10). 여기에서 다시 예표가 대형 속으로 통합된다. 그것도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다윗의 헌신적인 추종자들 중 한 사람에게서 나온 그 제안은-그것은 의도는 좋으나 매우 인간적인 것이었다-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과 관련해 주님께 "주여, 우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라고 하여 마치 엘리야가 한 것처럼 그들을 살라버리기를 원하시나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