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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41] 어려운 시절의 친구들 1(사무엘하 16-17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41] 어려운 시절의 친구들 1(사무엘하 16-17장)

En Hakkore 2024. 3. 3. 12:06

아히도벨의 계략

앞 장에서 이미 우리는 사무엘하 16장 말미에 기록되어 있는 몸서리나는 사건(16:20-22 참고)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그것에 대해 아주 짧게 서술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계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하니"(삼하 16:20).

첫째, 우리는 압살롬이 언약궤-다윗은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다-를 수종하는 자들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은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여호와의 뜻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의 삶 전체를 통해 이교도로서 그리고 뻔뻔스러운 반역자로서 행동했을 뿐이다.

둘째,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그토록 악하게 행동하게 하면서 품었던 분명한 의도는-매튜 헨리는 이때 그가 "하나님께"(삼하 16:23)가 아니라 "사탄의 신탁에" 물었던 것이라고 적절하게 지적한 바 있다- 자기의 새 주인이 다윗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었다.

셋째, 그러나 그 장면 뒤에는 자신의 말씀을 이루면서(삼하 12:11), 또한 다윗이 행한 악한 일 때문에 그가 여러 명의 아내들 외에도 "첩들"을 소유했다는 것은 그 시편 기자에게 불명예를 초래하는 행위였다-그를 징계하면서 모든 상황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사람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그가 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에 기습하여 그를 무섭게 하면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죽이고 모든 백성이 당신께 돌아오게 하리니 모든 사람이 돌아오기는 왕이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하니"(삼하 17:1-3).

이 악한 제안은 개인적인 원한의 감정 때문에 촉발된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앞에서 지적했듯이, 밧세바는 아히도벨의 손녀이고, 그러므로 그는 개인적으로 자기 집안에 행해진 잘못된 일에 대해 복수하기를 갈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든 아니든 상관없이, 사려 깊은 사람인 아히도벨은 이 상황에서 일을 지체하는 것은 위험하며, 따라서 만약 압살롬이 진정으로 그의 길에서 다윗을 제거하기를 바란다면 자기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이 지치고 낙담해 있을 때 신속하게 공격을 감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즉각 인식했을 것이다.

그때 사악한 압살롬 주위에 있던 자들은 그의 탐욕을 만족시키려면 그가 다윗을 죽이고 그의 왕좌를 차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제 결정해야 할 유일한 문제는 그 비열한 계획을 이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마침내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사악한 조언을 했을 때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 거룩한 두려움에 빠져 손을 들어 올리거나 그 방법의 조악한 부당함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았다.

얼마 전, 압살롬 자신이 죄를 짓고 도망쳤을 때, 다윗은 그가 죽어야 마땅했음에도 그를 추방 상태에 남아 있게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가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압살롬은 그런 부모자식간의 생래적인 애정마저 완전히 결여하고 있었고 완전히 배은망덕했기에 자기 아버지 다윗의 피를 보고자 했다.

사랑하는이여, 우리를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맡겨두실 때 우리가 (당신이나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어떤 상태가 될 수 있는지 보라. 타락한 인간의 완전한 부패라는 엄중한 진리를 부인하는 자들은 아주 멀리 나가 길을 잃고 있는 셈이다!

아히도벨이 제안한 계획은 압살롬처럼 교활한 사람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백성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것은 그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병력을 불필요하게 약화시키기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있었고 그 숫자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왕만 쳐 죽인다면, 그의 추종자들에게서 항복을 얻어내기는 쉬울 것이다. "목자를 쳐라, 그러면 양들이 흩어질 것이고, 쉽게 그것들을 먹어치울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아히도벨의 계획이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가야바가 제안했던 방식과 아주 닮았다고 지적해 왔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요 11:50). 그리스도의 다른 적들의 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막 12:7).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삼하 17:4).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쳐죽이자"는 아히도벨의 냉혹한 계획이 갖고 있는 절망적인 사악함을 압살롬의 마음을 두려움으로 채우기는커녕 그의 기꺼운 승인을 얻어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른다"(잠 4:18).

그러나 사악한 사람들과 유혹자들이 더욱더 악해진다는 것 역시 동일하게 사실이다. 떨어지는 돌은 타성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이 언덕 밑으로 더 많이 굴러갈수록, 그것의 속도 역시 그만큼 더 커진다. 자기를 마귀에게 완전히 팔아넘긴 자들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마귀는 자신의 가련한 희생자에게 쉼을 허락하지 않고, 오히려 그로 하여금 죄에 대해 더하게 함으로써 결국 그의 죄의 잔이 넘치도록 만든다. 사탄은 무자비한 십장(什長)이다. 그는 자기의 종들에게 계속해서 더 많은 벽돌을 찍어내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그런 악한 자로부터 구원을 얻기 위해 얼마나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가!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