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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77] 영적인 수단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77] 영적인 수단

En Hakkore 2024. 4. 5. 10:36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삶을 살도록 부름받았다. 그런데 이것은 아무 대가 없이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아무리 자신해서 드려진다 해도 희생에는 희생의 대가가 따라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일치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빌 3:10).

이것은 지적으로, 자의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이것은 마치 진정으로 만족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같이, 마치 어떤 사람이 결혼생활에서 그 자신을 상대편에게 아낌없이 바치듯이 신자는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의 것이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나의 것이로구나"(아 6:3)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통회하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비천하게 행해져야 한다. 이는 내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죄에 머물러 있었으며 그것의 종노릇 하기 위해 내 시간과 정력을 다 소비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도록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해져야 한다.♡

이것은 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기에 아무 조건도 자격도 없다는 마음으로 온전히 드려져야 한다. 이것은 성실한 마음과 간절한 염원을 갖고 범사에 그로 말미암아 지배받기를 즐겨 하는 마음으로 행해져야 한다. 이것은 그의 기뻐하심과 그의 관심을 내 자신의 것보다 앞세우기를 즐겨하는 마음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의무를 시행하는 근거와 동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것은 '내가 너희를 명하노니'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호소의 발로는 신적인 권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권한다'는 말은 부드럽고 사랑스런 권고의 언어이며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은혜에 대한 자비로운 응답의 요구이다.

'그러므로'는 선행된 말에 대한 추론, 혹은 귀결을 뜻한다. 사도 바울은 3:21부터 이런 장에 이르기까지 복음에 나타난 '자비'와 하나님 은혜의 부요함에 대해 서술해 놓았다. 이것들은 지식을 통과한 축복들로써 선택, 구속, 중생, 칭의, 성화, 보존과 영화의 약속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 이러한 무한한 은혜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 바울은 그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하나님이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 선함에 대해 "내가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대해 무엇으로 보답할꼬"라는 경탄의 말을 기대하였다.

그의 엄청난 사랑에 대해 내가 과연 무엇으로 드릴 수가 있단 말인가? 여기에 바울은 이러한 간절한 염원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렇게 하여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당신을 향하여, 당신안에서 행하신 모든 것들에 감사를 표할 수 있으리라. 이렇게 하여 당신은 그를 위한 당신 사랑의 진지함을 나타낼 것이다. 이렇게 하여 당신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그리고 그의 복음을 높이는 일을 스스로 증거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가 당신을 위해 행하신 모든 일들로 인하여 기쁘게 행할 것이다.

이것들은 단순히 말로만 감사를 표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감사의 삶을 살므로써 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사도 바울은 이전 여러 장에 걸쳐 나타냈던 은혜와 특권을 포함한 의무들을 표하기 시작했다. 이들 교리적인 강론은 고작 우리의 머리나 움직이게 하는 사색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불타오르게 하는 진귀한 깨달음이었다.

로마서 3 ~8장에 이르는 내용들은 우리의 지각이나 자극하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결단코 의무에서 특권을 제외시키거나, 아니면 특권에서 의무를 제외시켜서 생각할 수 없다. 이들은 모두 함께 생각해야 할 것들이다. '그러므로'(12:1에 나오는)는 앞서 나온 것들을 실제적으로 적용시킴을 뜻한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