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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79] 영적인 수단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79] 영적인 수단

En Hakkore 2024. 4. 5. 10:38

3. 말씀을 높이는 일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무오한 말씀을 우리의 모든 애정과 사상과 일상 생활 가운데서 마땅한 위치에 두어야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를 알고 깊이 깨달음을 받은 대로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은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시 138:2) 하신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거기에 둔다면 우리는 그것을 다른 무엇보다도 훨씬 높이는 결과에 이를 것이다(시 119:72). 우리가 말씀을 떠난다면 영적으로 완전한 암흑 가운데 빠질 것이다(엡 5:8).

성경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우리에 대한 그의 태도에 대해서, 그에 대한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성경이 아니고서는 죄의 본성이나 해악을 알지 못하고 죄의 오염이나 죄성에서 구원받는 방법을 깨달을 수 없다. 우리가 성경을 떠나서는 어디에서 나서 어디로 가고 있으며 중간 지점인 여기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성경 이외에서 찾을 방도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 우리가 싸워야 할 적, 우리가 요구하는 병기, 그리고 필요한 때 어떻게 도움을 구해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우리가 방금 위에서 지적한 사실들을 최소한 지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거기에서 적용되거나 역사될 때에는 실생활에서 상당한 차이를 낳고 만다. 하나님 말씀을 사용함에 있어서 견해의 차이 또한 크다.

로마 교회에서는 사람들에게 성경소지를 금했으며, 그것을 읽지 못하게 했다. 그것의 권위를 여지없이 떨어뜨렸으며 심지어 그것을 교양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로마 교회의 악한 누룩은 점점 멀리 넓게 퍼져 나가더니, 급기야는 교황제도를 정식으로 부인하는 명목상의 '프로테스탄트' 교도들까지, 성경은 신비한 책이며 아주 이해 불가능하며 '교회'만이 이 교훈을 설명하고 해석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감독이나 목사가 강단에서 전파하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제이차적으로 가르치는 신앙교육에 만족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써는 성경을 연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설교자가 전하는 내용을 시험해 볼 수 없고, 또 영원한 관심에 관하여 속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하여 실상은 그들과 열렬한 교황제도 신봉자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 '성경을 읽는' 또 다른 부루가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가 매일 성경을 읽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법으로 그렇게 한다. 그러나 너무나도 적은 경우에만 진리에 대한 구원의 지식을 소유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신앙적인 마력을 지녔다고 생각함으로 미신적인 방법으로 읽는다. 그들이 큰  위기를 당하거나 슬픔에 직면해 있을 때, 평소에는 무시하던 성경을 펴들고서 위로와 인도를 받으려고 한다. 만약 가까운 친구가 '신앙적'이라면, 그들은 대화중에 지적인 부분을 나타내지 못함으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그 내용에 더욱 밀착하려고 성경을 읽는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교파적인 색깔에 따라 읽으려고 한다. 그들은 소위 '우리의 신앙 고백'을 변호하기 위해 준비하며, 다른 사람과의 논쟁에서 그들을 공격하고 논박하기 위해 성경으로 무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호기심으로 읽으려고 한다. 그들은 호기심이나 만족시키고 지적으로 자부심을 갖는 정도로 만족해 한다. 그들은 특별히 예언, 형태, 수 등에 관심이 많다.

이처럼 사람들은 므두셀라와같이 나이 많을 때까지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하고 이러저러한 동기에서 무턱대고 성경을 읽는다. 사람들은 체계적으로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을 읽고 또 읽는다. 그들은 부지런히 성경을 통독하면서 구구절절이 비교. 검토. 연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유능한 '성경학도' 될는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왜 그런가?

이유는 그가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또 거기에 따라 행하지 못하지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에 대해, 그의 성품에 대해, 그의 다스리심에 대해, 그의 요구조건에 대해 계시하시기 위해 말씀을 주셨다.

이러한 말씀을 읽는 우리의 동기는 그에 대해, 그의 완전하심에 대해, 우리를 위한 그의 뜻하심에 대해 더욱 익숙해져야 한다. 말씀을 탐구하는 우리의 목적은 그를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 있어야겠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성품이 말씀이 주는 거룩한 능력으로 형성될 때,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의 율법으로 조목조목 규정받을 때 가능한 것이다.♡♡

마음은 가르침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러나 양심이 밝게 비추어지지 않고 심령이 감동을 받지 못하고 의지가 자극을 받지 못하면, 이러한 지식 따위는 우리를 한껏 붕 뜨게 해 놓았다가 정죄를 가중시키는 것들이다.

이전 여러 장들에 걸쳐서 우리는 주장하기를, 신자가 영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매일 육체를 죽이고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했다. 영적인 번창함을 얻기 위해서는 주요한 수단들이 있지만 우리는 이것들에 첫째와 둘째를 꼽았다.

그 다음으로 말씀을 위치시켰다. 이는 우리가 이 말씀의 가르침을 통해서만이 우리의 행사에서 어떻게 몸을 죽이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어떻게 이것을 세 번째 위대한 도움으로 만들 수 있느냐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그저 말씀을 연구하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위에서 지적했던 대로 사람들은 이것을 '연구' 하나(마치 주님의 시대에 서기관들이 했던 대로).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씀을 먹는다고 표현한다.

오늘날 말씀을 먹는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수천 명이나 되지만, 그들의 영혼은 아무런 성장을 보이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포괄적인 의미로서 말씀을 높이는 생활을 해야 하겠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