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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82] 영적인 수단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82] 영적인 수단

En Hakkore 2024. 4. 5. 10:39

성경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 정도가 아니다. 물론 그것은 어떤 예술가도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양식과 풍취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런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진귀한 보물이 묻혀 있는 광산 정도가 아니다. 물론 거기에는 킴벨라에 매장되어 있는 양보다도 훨씬 더 풍부한 보고가 있기는 하다.

우리의 매일의 삶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다는 사실은 만족할 만하게 깨달아지지 않는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우리는 이 마지막 의미심장한 주석을 생략하지 않았던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말씀을 단순히 지적으로 만족시켜 주려고, 호기심을 작동시켜 상상의 나래나 피게 해 주려고, 신학적인 논쟁의 불씨나 일으켜 주려고 주신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는 말씀과같이, 성경은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보여주며 파멸에 이르는 길을 지혜롭게 피할 방법을 보여 준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이렇게 하여 구약의 모든 말씀은 우리로 교훈을 얻게 하기 위해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난과 시험의 와중에서도 믿음과 순종의 생활을 하는 가운데 주를 더욱 굳게 붙잡음으로써 그리고 성경을 매일 정독함을 인하여 안위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과거의 죄와 현재의 수많은 단점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미래 천국의 소망 가운데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T. Scott).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죄를 짓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 일)이 거울이 되고 말세를 당한 우리에게 징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11). 이것은 또한 경고로 기록되었다. 이것은 우리로 용기를 가지게 하고 주의하게 하고 피하게 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우리는 그들과 비슷한 시험을 만날 것이며 그들의 경우와 동일한 악한 성품을 갖고 있다.

우리가 만일 육체를 죽이지 않으면 우리에게 그들과 동일한 저주의 파멸이 임하고야 말 것이다. "나로 주의 계명의 길로 가게 하소서"(시 119:35). 우리가 성경에서 행위를 인도함받기 위해 성경을 읽으려 할 때, 주의력과 확고한 결단력이 없이 그것을 대한다면, 거기에서 아무 유익도 얻을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정죄만 가중시킬 뿐이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함이니라"(요일 2:1). 바로 이것이 이 서신서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의 목적이요 관심사요 의도이다. 이것이 모든 교훈, 모든 명령, 모든 약속의 목적이다.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짓지 않도록 해주는 유일한 책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심에 대해 알려 주는 계시의 말씀이다. "주는 나의 앉고 섬을 아시며 내 마음의 생각까지도 감찰하심이니이다"(시 139:2). 이 말은 한 마디로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이다.

그의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심에 대해선 이런 말씀이 있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5:3). 이 말씀 역시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관해서 배우지 않았는가? 그러니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고 배우지 않았는가? 부활의 진리가 나타남은 우리로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않게'(고전 15:34)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아들은 어떠한 목적으로 나타나셨는가? 그것은 그가 마귀의 역사를 파멸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요일 3:8) 금보다 귀한 약속의 말씀이 우리에게 명백히 주어졌으니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기 위한 것이다.(고후 7:1)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우리는 이 말씀으로 양육받기 위하여 그것을 사모해야 한다. 그것은 사람이 교양받기를 갈망하는 것같이, 애굽의 고기를 갈망하다가 잠시 후 만나를 싫어했던 것같이 구해서는 안된다.

말씀을 사모하는 주요한 목적은 "너희로 자라게 하려 함에" 있다. 우리는 지식에서, 은혜에서, 거룩함에서 자라나야 하며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야"(엡 4:15) 한다. 하나님의 충만한 데까지 자라나서 남을 돕는 데까지 이르러야 하겠다.♡

말씀을 사모해야 하며 '온유함으로'(약 1:21) 받아야 한다. 이것은 거룩한 말씀의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써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의지는 완화됨을 뜻한다. 이것은 '믿음으로 화합됨'을 말하며(히 4:2), 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에 동화됨을 뜻한다. 이것은 옛날 히브리인들이 만나를 줍기 위해 땅에 엎드리고 무릎을 꿇는 것과같이, 낮아지고 겸손해지며 기도하는 자세 갖는 것을 의미한다.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시 119:12). 이것은 이것들을 내 생활의 모든 분야에 적용시킬 때, 행하는 방법을 알고자 하는  기도이다.

우리가 성경에서 유익함을 얻기 원하다면, 성경을 읽음으로 성숙하기를 원한다면, 참으로 성숙을 도모하려 한다면, 그것은 진지하게 기도하는 마음과 꾸준히 묵상하는 마음으로 행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와닿고 우리의 사상과 행위에 건전한 영향력을 미침을 뜻한다.

잊어버린 것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 속에 거듭해서 새겨지지 않으면 성경은 곧 잊어버려진다.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에게 놀라운 복이 주어진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이것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일 1:4). 거룩과 행복은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파멸과 슬픔은 악한 자의 길에 있으나(롬 3:16), 지혜자의 길에는 기쁨과 평강이 있다.(잠 3:17)♡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