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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39] 야곱의 예언 1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139] 야곱의 예언 1

En Hakkore 2024. 3. 22. 10:52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내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창 49:-12).

유다에 대한 야곱의 예언은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성취된다.♡

그것은 역대상 5:2과 짝을 이룬다.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여기에서 "주권자"(Chief Ruler)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나기드" 인데, 그것은 다니엘 9:24에서 "메시야 왕"(Messiah the Prince)으로 번역된 단어와 같은 단어이다(한글개역개역개정판에는 단순히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라고만 되어 있음).

우리 주님이 오신 것은 바로 이 지파로부터였다. 야곱의 예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첫째로, 우리는 유다와 관련하여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 것이라"라는 예언을 듣는다(8절).

여기에서 "찬송"으로 번역된 단어는 항상 하나님께 드려지는 찬미나 혹은 예배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이다. 그리스도는 육체를 따라 그의 "형제"된 자들 즉 이스라엘의 찬미와 예배를 받을 유일한 자이다.

둘째로, 유다에 대해 야곱은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에 대한 통치권을 가질 자이며, 그들의 원수들을 굴복시킬 자이다. 이러한 유다의 통치권은 그 지파로부터 나올 첫 번째 왕인 다윗의 때가 시작되었다. 그가 통치하는 동안, 유다의 손이 "그들의 원수들의 목을 잡았다."

셋째로, 여기에서 유다는 "사자"(lion)로 상징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9절).

이것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의 사자"로 일컬어지는 계시록 5:5을 일깨워 준다. 유다 지파의 운명이 사자의 상징으로 묘사되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이 지파의 역사(歷史)를 성장 과정을 따라 뚜렷하게 구별되는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계는 "새끼 사자"의 단계이며, 둘째 단계는 "젊은 사자"의 단계이며, 셋째 단계는 "늙은 사자"의 단계이다.

여기에 강함이 있어 이 지파가 걸어온 과정이 나타난다. 첫 번째 "새끼 사자"의 단계는 여호수아의 시대로부터 사울의 시대까지이다. 두 번째 "젊은 사자"의 단계는 용맹한 전사 다윗의 시대이다. 그리고 세 번째 "늙은 사자"의 단계는 "솔로몬의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그 이후의 시대이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49:10).

여기에서 "규"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같은 장 16절과 28절에서 "지파"로 번역된다. 그것은 어떤 지파나 혹은 종족을 대표하는 지팡이를 의미하는 단어로서, 권세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여기의 야곱의 예언은 그러한 "종족의 지팡이"가 어떤 특별한 인물이 올 때까지 유다로부터 떠나지 않을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실로" 즉 메시야가 올 때까지 유다가 계속해서 통치자의 권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언은 가장 놀랍게 성취되었다. 열 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왕국은 일치감치 멸망을 당했다. 그러나 유다는 메시야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 땅에 남아 있었다.

계속해서 야곱은 유다와 관련하여 이 지파로부터 "실로가 오시기까지 입법자(lawgiver)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The scepter shall not depart from Judah; nor a lawgiver from between his feet, until Shiloh come, 한글개역개정판에는 "통치자의 지팡이"라고 되어 있음).

실로가 온 후 이 지파에게 부여된 법적 권세가 사라진 것은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요한복음 18:31은 우리에게 그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고백인가! 이것은 그들에게 더 이상 통치권이 없으며 그들이 이방 권세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범법자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권세를 가진 자는 그 나라의 통치자(govenor) 혹은 "입법자"(lawgiver)이다. 가야바와 그의 무리들은 "우리에게는 사형을 선고할 권세가 없나이다. 오직 로마 총독인 당신만이 나사렛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의 이러한 고백 속에서 우리는 창세기 49:10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더 이상 그들 자신의 "입법자"를 갖지 못할 것이었다. 그들을 보라! 그들의 말이 그들을 정죄하고 있지 않는가(마 12:37). "규"는 떠났으며, "입법자"는 사라졌다. 그러므로 실로는 오셨음에 틀림없다.

"그에게 모든 백성이 모이리로다"(Unto Him shall the gatherring of the people be, 한글개역개정판에는 "복종하리로다" 라고 되어 있음).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내다본다. 이어지는 말씀이 암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유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11, 12절). 이러한 말씀은 이중적으로 적용된다.

첫째로는 유다 지파에 대해 적용되며, 둘째로는 그리스도 자신에 대해 적용된다. 가나안에서의 유다의 기업은 포도가 자라는 남쪽 지역이었다(대하 26:9-10을 보라). 아가 1:14에 "엔게디 포도원"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호수아 25:62에서 우리는 "엔게디"가 유다의 성읍들 가운데 하나였음을 발견한다.

또 여호수아 15:55은 우리에게 갈멜 역시도 유다의 기업에 속한 지역이었음을 가르쳐 준다. 또 창세기 49:11-12을 우리 주님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이사야 63:1-3을 볼 때 충분히 정당하게 되는 것으로 뵌다.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나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