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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50] 어린 시절의 요셉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150] 어린 시절의 요셉

En Hakkore 2024. 3. 23. 11:39

6. 그의 채색옷.

지금까지의 상징을 해석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제법 난해한 상징과 직면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럴 때 우리에게 도움을 베푸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채색옷의 의미를 추측하도록 우리 자신의 상상력에만 남겨 두지 않으셨다. 결코 그렇지 않다.

추측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된 말씀과 관련하여 무익할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불필요하다.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 💕 사사기 5:30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는다.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 놓은 채색옷이로다 곧 양쪽에 수 놓은 채색 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이 구별의 증표로서 채색옷을 입은 것을 발견한다. 또 사무엘하 13:18에서 우리는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라는 말씀을 읽는다. 여기에서도 같은 개념이 나타난다. 채색옷은 출가하지 않은 공주의 복장으로서 존귀의 증표였다.

사람들은 채색옷을 입음으로써 자신의 고귀한 신분을 나타냈다. 이와 같이 야곱이 (라헬로부터 태어난) 요셉에게 채색옷을 지어준 것은 그를(여종들로부터 태어난) 다른 이복형들로부터 구별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얼마나 훌륭한 예표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를 따른 그의 모든 형제들로부터 구별된 자이다.♡ 하나님이 그의 복된 아들의 채색옷을 나타내는 일에 얼마나 큰 관심을 기울이셨는지 생각해 보라. "처녀"를 통해 태어난 아기는 베들레헴 들판에 울려 퍼진 천사들의 노래로 말미암아 다른 모든 아기들로부터 구별되었다.

지금까지 태어난 어떤 아기도 하늘의 천군천사들로부터 이토록 열렬한 환영을 받은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동방박사들에게 나타난 "별" 역시도 새로 탄생한 왕이 하늘로부터 온 자임을 증언했다. 그가 세례를 받을 때에도 우리는 또 다시 채색옷을 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요단강에 와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가 물에서 올라올 때에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의 형상으로 그 위에 임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었다. 또 요한복음 12장에 나타나는 채색옷을 주목해 보라.

요한복음 13장에서 우리는 제자들이 발이 더러워진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의 (행함을 상징하는) 발은 (말씀을 상징하는) 물로 씻음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앞장에서 우리는 주님의 복된 발이 물로 씻음을 받는 것이 아니라 - 왜냐하면 그에게는 어떤 더러운 것도 없었기 때문에 - 값비싼 향유로 부음을 받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집 전체가 향기로 가득 찼는데, 이것은 상징적으로 그의 모든 발걸음이 아버지에게 달콤한 향기였음을 말해 준다. 이와 같이 또 다시 그리스도는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었다.

또 우리는 십자가에서도 채색옷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독특함은 다른 모든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죽음에서도 나타났다. 그의 죽음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죽음과 달랐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셨다." 또 그의 죽음을 전후하여 나타난 여러 가지 초자연적인 현상들 역시도 그의 죽음의 독특성은 증언한다.

세 시간 동안의 캄캄한 흑암이라든지, 지진이 일어나 땅이 흔들린 것이라든지,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과 같은 것들 말이다. 나아가 채색옷을 구성하는 "여러 색깔들"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다양한 영광과 무한한 완전에 대해 말해 준다.

7. 형들의 미움.

"그의 형들이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형들의 마음에 미움을 불러일으킨 것은 요셉에 대한 야곱의 사랑이었다. 이와 같이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과 형들의 미움 모두를 나타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냄과 동시에 사람들의 적대감을 드러내셨다.

사람들은 그가 자신들의 적대감을 드러낸 것으로 인해 그를 미워했든지, 아니면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그가 나타낸 은혜 안에서 피난처를 발견했다 - 둘 가운데 하나가 항상 따랐다. 그리스도가 바리새인들의 외식(外飾)을 드러냈을 때, 그들은 그를 미워했다. 반면 그가 사마리아 여자에게 그녀의 죄로 얼룩진 삶을 드러냈을 때, 그녀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왔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예컨대 "허물과 죄로 죽은 자연인의 일어버린 상태"와 같은 하나님의 진리를 들었을 때를 생각해 보라. 그때 사람들은 그러한 진리를 미워하며 자신들의 자기의(自己義)의 누더기 뒤에 숨든지, 아니면 빛으로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리를 숙이면서 복음이 전파하는 구주를 믿는다.

사랑하는이여, 당신은 어느 쪽인가? 당신은,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을 미워한 요셉의 형들처럼, 그리스도를 "멸시하며 배척하고" 있는가? 친구여, 착각하지 말라.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든지 미워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고전 16:22).

부디 시편의 다음과 같은 엄중한 경고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 2:12).

이제 창세기 37:1-11에 나타나는 몇 가지 요점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제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는 자가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창 37:5-11).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