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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48] 어린 시절의 요셉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148] 어린 시절의 요셉

En Hakkore 2024. 3. 23. 11:37

우리가 구약 성경을 주의 깊게 읽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거기에서 하나님이 다양한 방법으로 그 아들의 강림을 위한 길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연구는 단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다.

곳곳에 신적 성육신과 주 예수의 생애와 죽음이 예표적으로 나타나며, 우리는 바로 거기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켜야 한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방법들 가운데 다양한 사람들의 역사(歷史)가 있다. 💕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품이 나타나도록 하셨다. 이와 같이 아담은 그리스도의 머리됨(Headship)을 나타냈으며, 아벨은 그의 죽음을 나타냈으며, 멜기세덱은 그를 제사장으로 가리켰으며, 모세는 그를 선지자로 가리켰으며, 다윗은 그를 왕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이 모든 인물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단연 요셉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생애 사이에서 최소한 100가지 이상의 유비점(類比點)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앞서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매혹적인 주제를 다루었다. 이제 그들의 수고의 결과로부터 요셉의 역사(歷史)의 상징적인 의미들을 최대한 끌어내 보도록 하자.

위에 인용한 창세기 37:2-4로부터 우리는 요셉이 그리스도를 일곱 가지로 예표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일곱 가지는 다음과 같다.

그의 이름의 의미, 그의 일의 성격, 악에 대한 그의 대항, 그의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나이에 대한 그의 관계, 그의 채색옷, 그리고 형들의 미움, 이제 이러한 것들을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자.

1. 그의 이름의 의미.

그에게 "요셉"과 "사브낫바네아" 라는 두 개의 이름이 있었던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창 41:45). 유대 랍비들은 "사브낫바네아"를 "비밀을 드러내는 자"로 번역한다. 이러한 이름은 바로가 그의 신적 지혜를 칭찬하면서 지어 준 이름이었다.

우리는 요셉을 그의 인적 이름(human name)으로, 그리고 사브낫바네아를 그의 신적 이름(divine name)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요셉이 예표한 자 역시 두 개의 이름을 가졌다. 하나는 그의 인적 이름인 "예수" 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의미하는 "그리스도"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그는 그의 인성을 가리키는 "사람의 아들"(人子)라는 이름과 그의 신성을 가리키는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이제 요셉의 두 이름의 의미가 어떻게 그리스도와 관련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요셉"은 더함을 의미한다(창 30:24을 보라). 첫째 아담은 "빼는 자"였다. 반면 마지막 아담은 "더하는 자"이다. 첫째 아담을 통해 사람들은 잃어버린 자가 된다. 반면 마지막 아담을 통해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백성들을 계속해서 "더하는" 자이다.

그가 이 땅에 오셔서 30년 이상 사람들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가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은 바로 이러한 목적 때문이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그의 죽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다시 오실 때 그 모든 열매들은 천국 곳간에 들여질 것이다(요 14:3).

한편 요셉의 두 번째 이름은 "비밀을 드러내는 자"를 의미한다. 이것은 그를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이름이었다. 요셉은 항상 "비밀을 드러내는 자"였다. 단지 꿈을 해석할 때뿐만 아니라 그의 삶의 모든 장면에서와 그가 맡은 일 가운데, 그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드러내는 자" 였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얼마나 놀랍게 예표하는가!

그에 대하여 시므온은 이렇게  예언한다.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를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눅 2:34, 35).

창세기 37:2-4의 장면에서 요셉은 두 가지 측면에서 "비밀을 드러내는 자"로서 나타난다. 첫째로,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드러냈다. 그것은 그가 여기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특별한 대상으로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는 형들의 미워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복된 주님은 아버지의 마음을 드러내셨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의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그는 또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셨다.♡

사복음서가 제시하는 가장 두드러진 사실 가운데 하나는 주 예수가 어디를 가든 모든 것을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가 접촉하는 모든 것의 은밀한 상태를 분명하게 드러내셨다. 그는 진실로 "어둠" 가운데 비취는 "세상의 빛"이셨다. 그는 어둠 가운데 감추어진 것들을 찾아내며, 덮개를 벗기며, 폭로하며, 빛으로 드러내셨다. 이와 같이 요셉은 "더하는 자"이며, "비밀을 드러내는 자" 였다.

2. 요셉의 일은 목자로서 "양을 치는" 것이었다.

구약의 중요한 인물들 가운데 상당수의 사람들이 "양을 치는" 목자들이었다. 아벨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와 다윗이 그러했으며, 그들 각자는 우리 주님의 복자 되심을 다양한 측면으로 보여 준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 가운데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시편 23편은 그를 목자로서 묘사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우리 주님에 대해 배운 최초의 개념들 가운데 하나는 선한 목자였다. 이러한 상징은 그의 주의 깊은 돌보심, 그의 계속적인 보호하심, 그의 따뜻한 보살피심, 그의 복죈 오래 참으심,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그의 비할데 없는 사랑 등을 표현한다.

이와 같이 요셉은 "양을 치는" 목자로서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을 찾기 위해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의 지상(地上) 사역을 가리킨다.

3. 악에 대한 그의 대항.

"그가 그들의 악(evil)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한글개역개정판에는 "그들의 잘못을" 이라고 되어 있음). 요셉의 이런 행동이 종종 논쟁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요셉이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옹호한다. 그러나 여기의 요셉은 고자질쟁이가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자로서 간주되어야 한다.

그는 비겁한 침묵으로 그들의 악한 행동에 동조하는 자가 되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예표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분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요한복음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요 7:7).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