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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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징적 혹은 대표적 관점으로부터의 가인과 아벨 가인과 아벨은 각각 두 부류의 사람을 대표한다. 한 사람은 버림받은 자를 상징하며, 다른 사람은 구원받은 자를 상징한다. 한 사람은 형식적인 신앙고백자를 상징하고, 다른 사람은 참된 신자를 상징한다. 한 사람은 자기 공로를 의지(依支)하는 자를 상징하고, 다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의지하는 자를 상징한다.♡ 한 사람은 자기 공로로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를 상징하며, 다른 사람은 기꺼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자 하는 자를 상징한다. 한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거절되고 저주받은 자를 상징하고, 다른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복받은 자를 상징한다. 가인과 아벨 모두 타락한 부모의 자녀들이었으며, 에덴 동산 밖에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8, 9절). 죄는 감출 수 없다. 가인의 죄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것을 보고 계셨다.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엄중한 교훈을 가르쳐 주는가!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민 32:23).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마 10:26). 이러한 말씀들은 우리에게 동일한 진리를 가르친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예리한 질문에,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7절). 주석가들에게 이 구절은 항상 어려운 구절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는 이 구절과 관련하여 충분히 만족할만한 설명을 보지 못했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가인아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냐? 만일 네가 선을 행한다면 다시 말해서 합당한 제물을 드린다면, 네 제물은 받아들여질 것이니라. 그러나 만일 네가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네가 드린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그 해결책은 속죄제물이니라. 너는 마땅히 속죄제물을 드릴 것이니라. 그리고 만일 네가 그것을 드린다면, 너는 '우울함'을 가질 것이니라. 다시 말해서 너는 장자권을 가지면..
이제 가인과 아벨이 여호와께 가지고 나온 제물의 성격과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고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이유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바로 이것이 우리가 본장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의 관심의 초점은 단순히 가인과 아벨 두 사람에게가 아니라, 그들이 드린 제물들 사이의 차이에 맞추어져야 한다. 본문 가운데 가인이 자연적이며 도덕적인 관점에서 아벨보다 더 악한 사람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인은 불신자도 아니었고, 무신론자도 아니었다. 그는 기꺼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그는 "땅의 소산으로 삼아 여호와께 가져왔다"(3절). 여기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그의 제물은 피 없는 제사였다. ..
창세기 3장과 4장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다. 전자(前者)에서 우리는 사람 안에서 죄가 시작되는 것을 본다. 그리고 후자(後者)에서는 그렇게 시작된 죄가 자라 열매를 맺는 것을 본다. 전자에서 죄는 개인 안에 있었지만, 후자에서 그것은 가족 가운데 있다. 마치 나병처럼 죄는 사람을 부정하게 하고, 점점 더 퍼져나가다가, 마침내 사망을 맺는다. 3장에서 죄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었다. 반면 4장에서 그것은 같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여기의 순서는 항상 동일하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이웃의 권리에 참된 존중심을 갖지 않는다. 또 4장에서 우리는 3:15이 부분적으로 성취되는 것을 본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
이제 그리스도께서 타락의 저주를 짊어지신 것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첫째 아담이 죄로 말미암아 어떤 형벌이 따랐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함에 있어 우리는 스스로를 창세기 3장에만 제한기키고자 한다. 창세기 3:17 이하에서 우리는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것의 일곱 가지 결과를 추적할 수 있다. 첫째로, 땅이 저주를 받았다. 둘째로, 사람은 평생 동안 슬픔 가운데 그 양식을 먹게 되었다. 셋째로, 가시와 엉겅퀴가 나게 되었다. 넷째로, 사람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게 되었다. 다섯째로,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여섯째로, 불붙는 칼이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다. 그리고 일곱째로, 금지된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가 실현되었다. 이것이 타락의 결과로써 아담 위..
이제 마지막 아담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마지막 아담을 생각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이 정반대인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 그리스도는 첫째 아담이 그토록 잔혹하게 모독하고 부인한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하심과 권위를 완전하게 옹호하신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옹호했는지 생각해 보라! 아담은 하나님이 자신의 유익이 증진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신다는 약한 생각을 품었다. 이와 같이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생각을 정반대로 뒤집으셨다.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에서, 그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동정심을 충분하게 나타내셨다. 병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동정하시는 것에서, 치유의 기적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애절한 눈물에서..
창세기 3장을 그리스도와 연결하여 연구하지 않는 것은 올바른 연구가 아니다. 그 안에 있는 많은 구절들이 우리가 아담과 그리스도를 함께 연결시키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인물을 주의 깊게 비교하며 대조할 필요가 있다. 본 단락을 고찰함에 있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살피고자 한다. 첫째로 성격과 행동에 있어서의 첫째 아담과 마지막 아담 사이의 대조, 둘째로 타락의 저주를 짊어지신 그리스도, 그리고 셋째로 타락의 결과를 역전시키고 "더 나은 것"을 가져오신 그리스도. 이제 이 세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금지된 열매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하나님의 권위를 모독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사람의 마음이 바랄 수 있는 모든 축복으로 둘러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