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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30] 가인과 아벨 2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30] 가인과 아벨 2

En Hakkore 2024. 3. 14. 10:55

2. 상징적 혹은 대표적 관점으로부터의 가인과 아벨

가인과 아벨은 각각 두 부류의 사람을 대표한다. 한 사람은 버림받은 자를 상징하며, 다른 사람은 구원받은 자를 상징한다. 한 사람은 형식적인 신앙고백자를 상징하고, 다른 사람은 참된 신자를 상징한다. 한 사람은 자기 공로를 의지(依支)하는 자를 상징하고, 다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의지하는 자를 상징한다.♡

한 사람은 자기 공로로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를 상징하며, 다른 사람은 기꺼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자 하는 자를 상징한다. 한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거절되고 저주받은 자를 상징하고, 다른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복받은 자를 상징한다.

가인과 아벨 모두 타락한 부모의 자녀들이었으며, 에덴 동산 밖에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두 사람 모두 본질적으로 "진노의 자녀"였으며, "진노의 자녀"로서 법정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었다. 또 두 사람 모두 죄 가운데 잉태되었으므로 두 사람 모두 구주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가인은 자신의 타락과 멸망의 상태를 부인했으며, 하나님이 준비하신 해결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반면 아벨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했으며, 신적 증언을 믿었으며, 대속의 희생제사를 믿었으며,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간주되었다.

창세기 3장을 공부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첫 조상들을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아내시기에 앞서 그들에게 구원의 방법을 계시하셨음을 보았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3:21). 바로 이것이 이 땅에서 전파된 - 말씀으로가 아니라 상징으로 - 최초의 복음 설교였다. 💕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심으로써, 하나님은 그들에게 네 가지 교훈을 가르치셨다.

첫째로,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수치를 가릴 수 있는 합당한 옷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 둘째로, 그들 자신의 손으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만든 치마는 하나님에게 받으실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

셋째로,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수치를 가릴 수 있는 옷을 준비하셔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넷째로, 그들의 수치를 가리는 것은 반드시 죽음을 통해 얻어져야만 한다는 것. 죄의 삯은 사망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깨트렸으며, 공의는 그들에게 다른 것이 죽어야만 한다. 먼저 공의가 만족된 연후에야 비로소 긍휼이 올 수 있다. 은혜는 "공의로 말미암아" 통치하며, 자신이 드러나기 위해 공의를 희생시키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긍휼로 다루셨지만, 그렇게 하기에 앞서 먼저 깨어진 율법의 요구와 직면하셨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심으로써 죄는 오직 희생제물의 대가(代價)에 의해 가려질 - 혹은 속죄될(히브리어에서 속죄는 곧 "가려지는"을 의미한다) -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강력한 상징으로 보여주셨다.

다시 말해서 죄가 가려지기 위해서는 생명이 취하여지고 피가 흘려져야만 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에덴 동산 자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첫 번째 상징과 그림자를 발견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대속(代贖)의 복된 진리를 가르치셨다. 그것은 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를 위해 죽는 것이며, 무죄한 자가 죄인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범했으며, 멸망 아래 있었다. 그러나 무죄한 짐승이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으며, 그것의 죽음으로 그들의 죄와 수치를 가리는 옷이 준비되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의 옷이 준비되었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완전하게 만족시키는 "최고의 옷"이다.

이와 같이 에덴 동산에서 우리는 최초의 복음 메시지를 듣는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또한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우리의 첫 조상들에게 입힐 가죽을 얻기 위해 동물을 죽이신 것에서, 하나님은 죄인이 창조주에게 나아올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셨다.

그것은 다름 아닌 피가 흘려지는 것이었다. 사람은 자신과 하나님의 진노 사이에 대속물을 놓아야만 한다. 동물을 죽이는 것에서 제물을 드리는 자는 자신을 제물과 동일시하면서 자신이 죄인이며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사망에 처해져야만 함을 인정했다.

또 자신과 동일시한 재물을 죽이는 것에서 그는 자신의 대속물의 죽음과, 하나님의 요구가 충족되는 것과, 신적 공의가 만족되는 것과, 자신의 대속물이 죽임을 당함으로 자신이 자유롭게 되는 것을 보았다.♡

여기에서 내가 창세기 3:21의 의미를 다시금 설명한 것은 그 구절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4장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담과 하와는 창조주에게 나아가는 조건과 관련하여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분명하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요구를 분명하게 계시하셨으며, 그러한 요구들은 그들을 통해 그들의 자녀들에게 알려졌다. 이와 같이 가인과 아벨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지 위해서는 반드시 피의 제물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히브리서 11:4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벨이 제물로서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린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한편 로마서 10:17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와 그의 형이 하나님의 요구를 "들은" 것은 의문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Arthur W. Pink 창세기강해 p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