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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27] 가인과 아벨 1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27] 가인과 아벨 1

En Hakkore 2024. 3. 14. 10:53

이제 가인과 아벨이 여호와께 가지고 나온 제물의 성격과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고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이유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바로 이것이 우리가 본장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의 관심의 초점은 단순히 가인과 아벨 두 사람에게가 아니라, 그들이 드린 제물들 사이의 차이에 맞추어져야 한다. 본문 가운데 가인이 자연적이며 도덕적인 관점에서 아벨보다 더 악한 사람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인은 불신자도 아니었고, 무신론자도 아니었다.

그는 기꺼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그는 "땅의 소산으로 삼아 여호와께 가져왔다"(3절). 여기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그의 제물은 피 없는 제사였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둘째로, 그의 제물은 그 자신의 수고의 열매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그 자신의 노력의 산물이었으며, 한 마디로 그 자신의 손으로 행한 공로였다. 셋째로, 그는 창세기 3:17에 기록된 신적 판결 즉 "땅이 저주를 받은"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땅의 열매"를 가져왔다.

반면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가져옴으로써 생명이 취하여지고 피가 흘려져야만 하는 원리를 지켰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성령은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논평한다(히 11:4). 성령은 아벨이 가인보다 더 훌륭했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다만 아벨이 드린 제물이 창조주를 기쁘시게 하고 그분께 받으실만한 것이었다고 말씀할 뿐이다.♡

계속해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는 말씀을 듣는다(4절).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히브리서 11:4은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라고 말한다. 히브리서의 표현으로부터 우리는 여호와께서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음을 나타내신 방식이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제물을 사른 것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레 9:24, 삿 6:21, 왕상 18:36, 대상 21:26, 대하 7:1 등을 참조하라)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과 그의 제물은 귀하게 받지 않으셨다"(5절). 의심의 여지없이 가인의 제물은 매우 아름다운 것이었을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의 제물은 많은 수고와 노력의 대가를 치은 것이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는 상당한 만족과 함께 여호와 앞에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그의 제물을 받으셨음을 나타내는 어떤 외적 증표도 없었다. 그의 제물을 사르기 위해 하늘로부터 어떤 불도 내려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가인의 안색이 변했다. 자신의 모든 수고가 헛되게 끝난 것으로 인해 그는 격노했다.

자신의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할 수 없음을 알았을 때, 그는 화가 났다. 그리고 나중에 보게 될 것처럼 아벨이 자기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는 분노로 가득 찼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사람의 어두워진 이성(理性)이 성령에 의해 조명(照明)되지 않고 육신적인 증오심이 성령에 의해 정복되지 않는다면, 피의 제물 없이는 결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개념에 대해 사람들은 분노하며 적의(敵意)를 표출한다. 교만과 자기 의 가운데, 자연인(natural man)은 속죄와 대속의 진리를 심지어 마귀를 증오하는 것보다 더 증오한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6절).

하나님이 자신의 재물을 받지 않은 것으로 인한 분노로 가인의 마음상태가 분명하게 나타났다. 오늘날의 많은 예배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예배는 명백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예배였다(딤후 3:5).

요컨대 그것은 진실함이 결여된 예배였다. 가인의 제물이 참된 영으로 드려진 것이었다면, 하나님이 받지 않을셨을 때 그에게 분함 가운데 안색이 변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도리어 겸손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기꺼이 배우고자 했을 것이다. 💕

Arthur W. Pink 창세기강해 p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