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159)
En Hakkore
노아의 인물과 성격을 연구함에 있어, 그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온전한 연구가 될 수 없다. 이제 모형(노아)과 원형(그리스도) 사이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일치점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1. 노아라는 이름 자체가 장차 오실 자를 미리 나타낸다.♡ 창세기 5:28절에서 우리는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하는 말씀을 읽는다. 노아는 "안식" 을 의미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안식을 가져다 줄 자" 와 "저주로 말미암아 초래된 수고로부터 위로를 가져다 줄 자"로 인식했다.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29절). 라멕은 자기 아들을 "저주로부터 구원을 가져다 줄 자..
"하나님의 아들들"이 타락한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해석을 반박하기 위해 종종 마태복음 22:30이 인용되곤 한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30).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 말씀을 주의 깊게 연구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여기에 앞의 해석과 상충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 주님이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천사들과 같으니라"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러한 반박은 상당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는 "천사들" 앞에 "하늘에 있는" 이라는 한정어를 덧붙이셨다. 바로 이것이 모든 차이를 만든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은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간다. ..
이제 홍수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자.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창 6:1, 2). 여기의 "하나님의 아들들"의 정체와 관련하여 주석가들 사이에 많은 의견 차이가 있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관점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의 결혼을 신자들과 불신자들의 결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후손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리고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을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두 계열이 점차적으로 혼합되어 마침내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 사이의 구분선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홍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
뿐만 아니라 그에 더하여 그들은 신적 계시의 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적 계시의 빛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었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 첫째로, 사람들은 구속자의 약속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첫 조상들이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나기 전에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으며, 신자들은 그의 나타남을 대망(待望)하며 기다렸다(창 49:18을 보라). 둘째로, 여호와께 나아가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속죄의 희생제사가 있었다. 하나님은 이것을 가죽옷을 통해 아담과 하와에게 알려 주셨다. 그것은 그들의 벌거벗은 것을 가리기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그러한 희생제사를 드려야 할 필요성과 그것의 의미가 ..
에녹에 대해 공부하는 가운데, 우리는 "므두셀라"라는 그의 아들의 이름 속에 장차 임할 홍수에 대한 암시가 담겨 있음을 살펴 보았다 -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창 5:21). 므두셀라의 의미는 "그가 죽을 때 그것(즉 홍수)이 임할 것이라"이다. 이와 같이 그의 이름에 신적 계시가 담겨 있었다. 세상은 에녹의 아들이 살아 있는 동안만 존속할 것이었다. 만일 베드로전서 3:20이 여기의 창세기 5:21과 연관된다면, 우리 앞에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 펼쳐진다. "그들(즉 지금 옥에 있는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벧전 3:20). 방주가 준비될 때까지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신" 것은 도대체 ..
히브리서 11:7의 노아의 믿음에 관련해서... 넷째로, 우리는 여기에서 노아의 믿음의 증거를 배운다. 그것은 "방주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생명이 없는 믿음이며, 단지 이름뿐인 믿음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 아니다(딛 1:1).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고 반문한다(약 2:12).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반면, 야고보는 믿음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혹은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스스로를 신자라고 고백한다. 그러면 나는 그런 고백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나의 ..
노아의 성격은 창세기 6:9에서 세 가지로 묘사된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첫째로, 그는 "의인"이었다. 그는 그와 같은 이름으로 일컬어진 첫 번째 사람이었다. 의롭다하심의 공로적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며(롬 5:9), 그것의 도구적 원인은 믿음이다(롬 5:1).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열다섯 명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 사이에서 노아를 발견한다. 노아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믿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한" 것으로 증명되었다(히 11:7). 둘째로, 그는 "당대에 완전한" 자였다. 이러한 언급은 노아와 그의 가족이 자신들을 네피림과의 접촉으로부터 지킴으로써 그 ..
노아의 계보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밖에 언급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조상들의 자손이었던 사실은 충분하게 나타난다. 노아는 하늘로 옮겨진 에녹의 증손이며, 므두셀라의 손자며, 라멕의 아들이었다. 라멕은 아들이 태어나던 날 그 이름을 "노아"라 부르면서,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라고 말했다(창 5:29). 라멕이 믿음의 사람이었던 사실은 그가 "수고롭게 일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신" 것과 연결시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에게 그의 아들 노아를 통해 장차 당신이 이루시고자 하는 계획을 어느 정도 계시하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기 아들을 "위로"와 "안식"을 가져다줄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