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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25] 타락과 그리스도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25] 타락과 그리스도

En Hakkore 2024. 3. 14. 10:51

이제 그리스도께서 타락의 저주를 짊어지신 것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첫째 아담이 죄로 말미암아 어떤 형벌이 따랐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함에 있어 우리는 스스로를 창세기 3장에만 제한기키고자 한다. 창세기 3:17 이하에서 우리는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것의 일곱 가지 결과를 추적할 수 있다.

첫째로, 땅이 저주를 받았다. 둘째로, 사람은 평생 동안 슬픔 가운데 그 양식을 먹게 되었다. 셋째로, 가시와 엉겅퀴가 나게 되었다. 넷째로, 사람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게 되었다. 다섯째로,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여섯째로, 불붙는 칼이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다. 그리고 일곱째로, 금지된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가 실현되었다. 이것이 타락의 결과로써 아담 위에 떨어진 저주였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어떻게 죄의 모든 결과들을 완전하게 짊어지셨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3).

둘째로, "슬픔의 사람"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그리스도께서 슬픔에 대해 완전하게 아셨다(the man of sorrows, 한글개역개정판 사 53:3에는 "질고를 아는 자"라고 되어 있음).

셋째로, 그리스도께서 "가시관"을 쓰셨다(요 19:5).

넷째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동안 그리스도께서 "핏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땀을 흘리셨다(눅 22:44). 이것은 첫째 아담이 먹을 것을 먹기 위해 흘려야만 하는 땀과 상응하는 것이었다.

다섯째로, 첫째 아담이 흙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아담은 "주께서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라고 부르짖었다(시 22:15).

여섯째로, 스가랴 13:7의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는 예언처럼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가로막은 공의의 칼이 하나님의 아들의 옆구리를 찔렀다.

일곱째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영적인 죽음 즉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고통을 맛보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우리의 복된 구주께서 스스로를 잃은 자들과 완전하게 동일시하신 것과, 불의한 자의 자리를 취하신 것과,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들을 위해 고통을 당하신 것을 생각해 보라! 그리스도가 자기 몸으로 타락의 모든 저주를 짊어진 것은 얼마나 명백한 사실인가!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의 모든 결과들을 역전시켰다. 오직 하나님만이 악으로부터 나타내는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만일 세상에 죄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의 지혜와 은혜의 부요함은 그토록 풍성하게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구속의 영역에서 그리스도는 타락의 결과들을 역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것 때문에 "더 좋은 것"을 가져다주셨다. 사람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에 참여하는 것은 신적 지혜와 은혜의 아주 놀라운 기적이다. 구속받은 자들은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잃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마지막 아담을 통해 얻었다. 💕

그들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타락 이전의 아담은 지상의 낙원에 거했지만, 구속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보좌에 앉는다. 또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늘의 본성을 입는 복을 받았다. 타락 이전에 사람은 자연적인 생명을 소유했지만,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신적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또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신분을 얻었다. 아담은 단지 무죄했을 뿐이었다 - 이것은 적극적인 상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의롭다 - 이것은 적극적인 상태이다. 또 우리는 더 나은 기업(基業)에 참여한다.

아담은 에덴 동산의 주인이었지만, 신자들은 "만유의 상속자" 이며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이다. 또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타락하지 않은 영들이 알았던 것보다 더 크고 심오한 기쁨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죄사함 받은 희열이라든지 혹은 신적 긍휼에 빚진 자라는 의식으로부터 나오는 천상의 기쁨 같은 것들 말이다.

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다. 우리는 그의 몸의 피조물에 불과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다.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로서, 그의 뼈 중의 뼈요 그의 살 중의 살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우리는 신성(神性)과 더불어 연합되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타락은 구속의 필요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통해 신자들은 타락하지 않은 아담은 결코 가질 수 없었던 분깃을 갖는다. 진실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Arthur W. Pink 창세기강해 p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