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168)
En Hakkore
라합의 사례에서 우리는 신적인 주권이 시행되며 신적 은혜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권능의 놀라운 역사를 우러러 바라볼 수도 있다. 특히 거기에 사실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요소가 거기에 개입되어 있는 것을 잘 생각해 보면 이것이 명확히 드러난다. 곧 여기서 성령께서 일상적인 은혜의 수단과는 전혀 상관없이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여리고에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일도 없었고, 읽을 성경도 없었고, 선지자들이 하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예도 없었는데도, 라합이 새 생명으로 일깨움 받았고 참되신 하나님을 아는 구원 얻는 지식으로 인도함 받았다는 사실이다. 전능하신 여호와는 특정한 대리자들을 사용하셔서 하거나 수단이 없어 방해를 받으시는 법이 없다. 그가 기뻐하시는대로 그런 수단들을 사용..
구원 얻는 믿음에는 언제나 복음적 회개가 뒤따라온다. 곧 과거에 지은 죄들에 대한 탄식과, 다시는 그것들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결심이 그것이다. 구원 얻는 믿음은 언제나 순종으로 이어지며, 선행에서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이들은 그들 자신의 구원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물론 다른 이들의 구원에-특히 자기들과 가까운 친밀한 자들의 구원에-깊은 염려와 관심을 갖는다.🍇 그리스도께서 사마리아의 그 간음한 여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시자,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주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믿었다"(요 4:28-29). 라합 역시 자기 아버지의 집에 자비를 베푸시기를 구하였고, 그녀의 온..
3. 기생 라합의 믿음 여호수아는 거의 인식하지 못했지만, 두 정탐꾼들은 "그 땅과 여리고(2:1)로 보내어 살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요 그분의 인도하심이었다. 왜 그럴까? 하나님의 택한 자 한 사람이 그 성에 거주하고 있었고, 그분의 양 가운데 그 누구도 멸망하지 말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긍휼의 그릇에게로 인도된 것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이 이루어져서 "믿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게"(히 11:31, 개역개정은 "순종하지 아니한 자"로 번역함, 역자주)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그 두 정탐꾼이 여리고 들어가 라합과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은 비단 군사적인 목적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고, 그보다 더 중요하고도 복된 목적이 있었다. 이는 하나님이 일하실 때에 언제나 양쪽 방향에서..
이 문제에 대해 맨튼(Thomas Manton)은 다소 퉁명스럽게 정리하기를, "그녀의 거짓말은 연약함이요, 이를 하나님이 용서하셨으니, 사람들이 이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 라고 했다. 기억할 것은 라합이 여호와를 만난 것이 바로 얼마 전이었다는 점이다. 어린 회심자들은 진리에 대한 선명한 지식이 별로 없고, 따라서 성숙한 성도에 비해 기대할 것이 적다. 그들은 갖가지 실수를 범하면서도, 가르침을 받을 줄 아는 처지에 있고, 진리의 빛이 증가할수록 더욱 더 정리된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문의 내용에서 배워야 할 세 가지 교훈들을 이렇다. 첫째, 동기가 옳으면 행동도 정당화된다는 식의 오류가 오늘날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그것에 대한 반박을 보게 된다. 무가치한 동기가 선한 행실을 ..
죄의 위중함의 정도를 결정하려 할 때에는 그 정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필자 자신이나 여러분이 거짓을 발설하는 것이 라합의 경우보다 훨씬 더 무거운 과실일 것이다. 우리는 라합보다 훨씬 더 큰 특권과 빛을 받고서도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라합은 이방 세계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그 사실이 그녀의 과실을 경감시킬 수는 있으나, 그것이 핑계가 될 수는 없었다. 런던의 한 유명한 교회의 강단에서 한 설교자는 "라합의 거짓말이 정당했는가"라고 질문하고는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제시했다. "라합으로서는 거짓말을 하거나 아니면 그 정탐꾼들을 배신하여 그들로 목숨을 잃게 하거나 둘 중의 하나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불신앙의 사고방식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논의에서 배제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그런데 이제 문제가 제기됩니다. 라합이 자기 집에 묵고 있던 그 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이었는가 한다. 그녀의 처신에 대해 상이한 견해들이 제시되어왔고, 그녀의 입장을 정당화시키고자 갖가지 논지들이 제시되어왔다. 훌륭한 주석가들 중 어떤 이들은 심지어 청교도들 중에서도, 여기서의 그녀의 처신은 무죄하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우리가 아는 한 그녀가 여기서 죄를 지었다고 명백히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독교 저술가에게 닥치는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백성의 과실들에 대해 논평하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자기 우월감이라는 바리새적인 잉크를 묻혀서 글을 쓰는 일이 있어서도, 다른..
2. 라합의 처신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니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수 2:3-5). 이 본문을 주의 깊게 살펴본 분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몇 가지 큰 문제점을 접해 왔으므로, 다음 몇 가지 질문들에 답변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첫째, 라합이 왕의 권위를 무시하고 자기 동족을 배반한 일이 과연 옳았는가? 둘째, 라합이 여기서 말한 거짓..
좀 더 높은 시각에서 이 세세한 일을 바라보면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시 19:21)는 진리가 여기서 드러나는 것을 본다. 여리고 왕이 일을 도모했으나, 하나님이 그 일을 막으신 것이다. 여리고 왕은 이스라엘 사람이 전혀 그 성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그의 계획들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주께서 우리 앞에 열린 문을 세우시면 아무도 그 문을 닫을 수가 없다(계 3:8). 그런데 주께서 그 두 정탐꾼 앞에 여리고로 들어가는 열린 문을 세우셨으니, 아무리 사람이 그들을 막으려 해도 허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반대로 주께서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것"(계 3:7)도 똑같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은 여실 수 있다.💕 그러므로 절대로 패배를 용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