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7/20 (15)
En Hakkore
성한 눈 1(마 6:22, 23)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 6:22, 23). 이 구절들을 해석함에 있어 주석가들은 본질적으로는 일치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세부 설명에 이르러서는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특히 되풀이하여 언급된 '눈', 정확히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와 연관된 설명에서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이 사용하신 여러 용어들을 조심스럽게 검토해 보고자 한다. 그런 다음에 이 구절, 그 문맥 관계의 일관성을 확인하고 또한 우리들 자신에게 실제로 적용시켜 보기로 한다. "눈은 몸의 빛(the light)이니" 란 말씀이 백스터(B..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2(마 6:19-21)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21절). 이 구절은 앞 두 구절에 나타난 명령을 강조하기 위한 차원 높은 이유가 된다. 즉 그 근거는 앞 두 구절에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것으로서 각 사람이 순종하도록 설득하려는 것이다. 이 근거의 힘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네 마음은 땅의 것들이 아니라 하늘의 것들과 결합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너를 위하여 보물을 땅이 아니라 하늘에 쌓아 두라. 앞에서 말하였듯이 '보물' 이라는 말은 우리가 훌륭하고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것 곧 우리가 신뢰하고 그것에서 특별한 기쁨을 얻는 것으로서 장래를 위해 쌓아 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2(마 6:19-21)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0절). 앞 구절에서처럼, 그리스도는 한 가지 중대한 권고를 들어 그의 가르침을 지지한다. 즉 그것은 하늘의 보화는 변함이 없고 절대 안전하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추구하는 것과 기뻐하는 것이 그들의 것과는 구별되기 때문에 그들을 정신이 이상하고 손해만 보는 자로서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그를 위하여 행하는 모든 일이 장차 그날에는 우리의 것으로 계산될 것이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2(마 6:19-21) 셋째로, 이 보물을 발견하고 그것이 측량할 수 없이 보배로운 것임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얻어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하여 전력을 다해야 한다.♡ 지혜자가 말하였던 것처럼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잠 2:3-5).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목적을 위하여 정해 주신 수단들을 사용하라고 명령하신다. 그것들은 듣고, 읽고, 기도하고 믿음을 행사하는 것이다. 기록된 성경 말씀, 그리고 복음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은 두 손을 뻗쳐 우리에게 이 하늘의 보물과 모든 영적 축복들을 내밀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의 믿..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거짓으로 패한 척하여 광야길로 도망하매"(수 8:15). 여기에는 그저 역사적인 관심사를 넘어서고, 심지어 우리 마음에 실질적인 교훈을 주기까지 하는 무언가가 있다. 언뜻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고,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때의 여호수아의 처신이(바로 그 다음의 결말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부요하신 자로되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사 그분의 가난하심과 비천함과 고난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부유하게 되게 하신 그분을 그림자로 보여 주는 점이 명백히 놀랍게 드러나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 전략에서 행한 일은 그의 원형이신 우리 주 예수님께 적용할 수 있다. 여호수아는 자기를 굽히고, 마치 자기가 정복 당하는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정복했..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거짓으로 패한 척하여 광야길로 도망하매" 8:15). 그들은 거짓으로 공포에 질린 체하면서, 가나안 족속들을 상대로 견고히 싸우려 하지 않고 광야길로 뿔뿔이 도망했다. 이스라엘 주력군으로서 스스로 비겁하게 처신하는 일이 싫고 모욕적이었으나 그들의 계획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 역시 다른 동료들이 정당하게 이를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굴욕적인 처신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왕의 모든 신화가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듯이, 교회에서도 모든 사람이 똑같이 존귀한 위치에서 존귀한 일들을 담당할 수는 없다. 싸우는 군사들은 물론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필요한 법이다. 다윗의 시대에 검을 차고 다윗을..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내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출 34:24). 사람들이 인력으로 농터를 지키지 못할 때에, 하나님이 주변의 이방인들의 탐욕스런 욕심과 계략들을 억제하신 것이다. 바로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아이 성의 왕이 미리 사방으로 정탐꾼들을 보내지도 않고 전군을 출병시켜 성을 무방비 상태로 놓아둔 것은 하나님의 억지력에 기인한 일이었다.👌 그들은 "일찍이 일어나 급히 나가 아라바 앞에 이르러 정한 때에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였다"(14절). 전에 거둔 승리에 취하여 자만심이 가득 차서 결국, 완전한 멸망 속으로 스스로 돌진하고 만 것이다. 바로와 그의 군대 역시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셔서"(잠 21:1). 때로는 지혜롭게 때로는 어리석게 처신하게 하신다.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선대하게 하시고(스 6:22), 바로 왕의 경우처럼 때로는 그들을 미워하게 하신다. 여기 본문에 나타나는 사실에서,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와 악인에 대한 그의 완전한 통제하심을 충격적인 신뢰를 접하게 된다. 그의 통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 이방의 왕은 성과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인 가장 기초적인 예방 조치조차 행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도 방금 지적한 이 점은 거의 지키지 않는 예가 허다하다. 세상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통치자께서 그분의 백성의 선을 위하여 악인들에게 억지력(restra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