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3/01 (15)
En Hakkore
다윗의 딸 다말은 다윗이 다른 부인에게서 얻은 아들인 암논에게서 악한 일을 당한 후 압살롬의 집에서 살았다. 그녀의 오라비인 압살롬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삼하 13:22a). 압살롬의 적의는 시간이 흘러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는 단지 복수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이것은 그의 실제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 준다. 물론 죄와 상관없는 분노도 있다. 가령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온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막 3:5).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육신에는 불붙기 위운 본성이 너무 많기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권면의 말씀에 유념하면서 진지하게 기도해야 한다...
태생의 문제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삼하 13:22). 이제 성령께서는 우리의 관심을 성경에 기록된 가장 천하고 악하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인물들 중 하나에게로 돌리신다. 우리가 성경에서 압살롬과 관련해 얻는 첫 번째 정보는 그의 조상에 대한 것이다. 그는 이방인의 줄기에서 나왔다! 그의 어미는 이방인으로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삼하 3:3)였다. 그술 사람들은 포악하고 고집 센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의 피 속에는 그들의 무법성의 기질이 흐르고 있었다. 다윗은 마아가를 아내로 취함으로써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에 거역했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반복되는 죄악 다윗의 자식들은 그들의 아비의 타락이 그들에게 가르쳐 준 것을 배웠다. 그 왕이 거둔 열매는 참으로 비극적이었다. 어떤 부모에게는 자신의 죄가 자식들에게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신의 맏아들이 저지른 추악한 죄를 통해 한때 고삐가 풀렸던 자신의 욕망이, 그리고 그의 딸의 불행을 통해 그 욕망의 징후가 유령처럼 되살아나는 것을 보았다"(Alexander Maclaen). 여기에서 우리가 그 불쾌한 일을 상세하게 살펴볼 필요는 없다. 우선 암논이 그의 이복 누이동생에게 근친상간이라는 무서운 죄를 저지르기로 결심했다. 그 누이동생은 "아름다웠다"(삼하 13:1). 아, 얼마나 많은 젊은 여자들이 자신들이 예쁘지 않기 때문에 슬퍼하는가! ..
징계의 방식 여호와께서 나단을 통해 주셨던 무서운 경고를 실행하시는 방식에 주목하는 것은 교훈적일 뿐 아니라 엄중하기도 하다.🤞 그 경고는 다윗의 왕궁이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전소되거나 큰 폭풍으로 철저히 파괴되는 식으로 이행되지 않았다. 또 그것은 그의 아들들 중 하나가 번개에 맞아 죽고 다른 아들은 지진에 의해 땅 속으로 삼켜지는 식으로 실행되지도 않았다.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적 응보는 물리적 기적이나 도덕률의 집행을 통해 이행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다윗 집안의 가장 슬픈 재앙들이 그가 우리아에게 했던 악행의 방식을 따라 임하게 하셨다. 즉 그런 재앙들은 모두 섭리적 처리라는 방식을 통해 임했다...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선고의 세세한 내용들을 기적..
다윗의 죄의 당연한 결과인 징계가 신속하게 그에게 임했다. 비록 하나님이 그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그를]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삼하 23:5) 하셨을지라도, 또한 비록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였을지라도 여전히 그분은 그의 죄를 가볍게 여기기 않으셨다.🥺 여호와의 이름의 영광이 그러하기 위해서는 다윗이 지은 죄에 대한 그분의 진노를 보여 주는 비범한 징표가 뒤따를 필요가 있었다. 다윗은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했다"(삼하 12:14).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우리아에게 악을 행한 직후에 그를 죽이시지 않으시고 그가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무서운 슬픔을 맛보게 하심으로써 자신이 그의 죄를 용납하지 않고 계심을 보다 크게 선포하신다. 하지만 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그런 슬픔들..
징계의 시작 이제 다시 다윗에게 돌아가 보자.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삼하 12:15a). 그 선지자는 자신이 전해야 할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했고, 이제 왕궁에서 물러났다. 하나님이 그 종을 어떻게 높이셨는지 보는 것은 놀랍고도 복되다. 그분은 다윗을 감동시켜 그의 아들 중 하나의 이름을 "나단"이라고 짓게 하셨다(대상 3:5). 그리고 육신을 따라 그의 후손이 된 그리스도는 바로 그 나단의 혈통에 속했다(눅 3:31).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삼하 12:15b) 이제 선지자의 말이 비극적으로 성취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주권을 보라! 부모들은 살고, 아이가 죽어야 했다. 또한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이 세우신 법을 얼마..
악한 자의 험한 길 내가 위에서 명백히 하고자 했던 주장은 다윗의 경우를 통해 놀라운 실례를 얻는다. 아주 실제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은 "그의 죄를 따라" 그를 처벌하지 않으셨고, "그의 죄악을 따라" 그에게 갚지 않으셨다. 그러나 어느 의미에서 그분은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에게 선지자를 보내 그의 죄를 날카롭게 꾸짖으셨고, 그의 마음 안에서 죄의식과 회오(悔悟)가 일어나게 하셨다. 그분은, 시편 32편이 복되게 증거하듯이, 다윗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그의 죄를 씻어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록 그의 죄를 용서하셔서 그가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않으시고, 그의 영혼을 구원하시고, 그의 목숨은 구해주셨으나, 여전히 그가 행한 대로 갚으셨다. 그에게는 극심한 고통을 당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