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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거룩의 모든 근원과 원천은 하나님 자신뿐이다.♡ 거룩의 출처는 지음을 받은 피조물에게는 전혀 없다. 오직 거룩하신 분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을 만드셨을 때 인간은 그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자였다. 즉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것이다(엡 4:24, 골 3:10). 피조물은 생명을 창조하려는지 몰라도 자신의 거룩은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피조물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타락한 피조물, 죄로 인해 부패되었고 노예가 된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거룩하게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에디오피아 사람이 자신의 피부색을 바꾼다든지 혹은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하게 하는 것이 한센 병 환자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보다 더 쉬울 수 있다. 인간의 ..
3. 정결함과 성화(purification and sancitification) 이 둘은 결코 일치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분리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렷이 구별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조지 스미톤 목사의 글을 인용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고 본다. 그 두 단어는 이스라엘의 의식법에 종종 등장한다. '거룩케 하다, 정결케 하다'라는 말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동의어로 말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는 약간의 구분되는 것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제사의식에서 더럽혀지는 것이 재발하는 제물은 제거되게 되어 있는데 정결케 하다는 말은 그러한 의식들과 제물들에게서 더러운 오점들을 제거하는 일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더러운 오점을 지닌 예배자들은 하나..
앞서 이미 말했던 것과 비교하면서 신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을 숙고해 봄은 자못 흥미롭고 유익하다. 모세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유년 시절에 해당하며 이는 "때에 따라 아름답게" 되어진 것이다. 그러나 "때가 찼던" 지금 그러한 것들은 아주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유치원 시절에, 하나님께서는 감각에 호소할 수 있고 그림이나 상징으로 가르칠 수 있는 정교한 의식을 제도로 세워 놓으셨다. 거기에는 울긋불긋한 성막이 있었고 거창한 제사장의 예복, 향단, 악기의 연주가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특색있는 의미로 부각되었으나 본체가 나타났을 때 그것들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그들은 구식이 되어 버렸고, 그러한 것들을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에 부합시킨다는 것은 합당치 않는 유년 시절로 퇴보함을 의..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전 3:1,11), 이들 전도서 열 한 구절을 계속적으로 읽어 내려 간다면 여기에는 이 세상 인간사의 모든 일이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인생의 변화무쌍함과 영고성쇠(榮枯盛衰)는 다만 하나님의 불변하는 지혜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는 해 아래 모든 일의 목적을 이룰 때를 정하셨으며 또한 그들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어떤 것도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르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모든 것은 완전하게 정해져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성경에서 배운 대로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모든 피..
긍정적인 의미에서 보아 힘써 우리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은헤, 즉 '성령의 열매'(갈 5:22,23)를 맺어가는 행위이다. 우리는 이러한 은혜를 건강하게 힘있게 정력적으로 나타내 보이는 데 책임을 지고 있다. 그들은 마치 잡다한 연약한 식물들과 같아서 그들에게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라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많은 포도넝쿨과 같아서 무성하게 자라난다면 땅에 끌리지 않도록 들어올려야 하며 전지(翦枝)하고 물을 뿌려주어야 한다. 그들은 모판에 있는 어린 싹들과 같아서 무성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옥토가 있어야 하고 규칙적으로 물을 뿌려 주어야 하며 햇볕을 쬐어 주어야 한다. 갈라디아서 5:22,23에 열거되어 있는 아홉 가지 목록들을 세밀히 관찰하고 나서 솔직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세째, 나무는 내부적으로 자라난다. 이 부분은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 중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이다. 우리는 이전에 식물학에 관해 연구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설사 그것을 연구했다 손치더라도 우리의 요점에 초점을 맞추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무가 내적으로 성장하는 문제는 상이한 부분에 해당하는 것 같지만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의 필요성은 우리에게 별로 중요치 않게 보인다. 이유는 이 비유가 여기에서도 적용된다면 우리는 불확실을 기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내적인 성장은 설명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며, 나아가 실행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내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다른 분야에서의 성장이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외적인 성장이란 단순히 씨종자의 확대..
"은혜 안에서 자라니라"(벧후 3:18)는 이 말씀은 우리가 자주 인용했지만 거의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은혜 안에서의 성장은 그리스도인의 은혜의 전개과정과 너무나도 빈번히 혼동되고 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이 책에 대한 제목을 정할 때 본 내용과 잘 어울리는 제목보다 색다른 제목을 선택하였다. 은혜 안에서의 성장은 영적인 성장의 일부분이거나 하나의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한 목사가 순진한 시골 아낙네에게 '은혜 안에서의 성장'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그 여인은 "그리스도인이 은혜 안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마치 암소 꼬리가 자라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에 당황한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다. "암소 꼬리가 자라면 자랄수록 그것은 땅에 가까와지지요,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은혜 ..
우리는 나무가 아래로 성장함을 비유로 들어서 그리스도인의 겸손에 대해 설명하였다. 나무가 위를 향해 자란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뿌리가 땅 속 깊숙이 박힘을 의미한다. 그와같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린다 함은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을 미워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만일 조금 안다고 해서 진리를 터득했다거나 소위 '체험'을 했다 해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거나 우리의 성취한 과업으로 그에게 기쁨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확실히 우리 스스로를 기만하는 행위이며, 우리가 제법 성장했다고 하는 망상 가운데 빠지게 하는 것들이다. 성경이 의미하는 바 위대한 의도는 하나님을 높이고 인간을 낮추는데 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체험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알고 있을 때 우리 자신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