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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44] 성장의 시기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44] 성장의 시기

En Hakkore 2024. 4. 3. 10:14

앞서 이미 말했던 것과 비교하면서 신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을 숙고해 봄은 자못 흥미롭고 유익하다. 모세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유년 시절에 해당하며 이는 "때에 따라 아름답게" 되어진 것이다. 그러나 "때가 찼던" 지금 그러한 것들은 아주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유치원 시절에, 하나님께서는 감각에 호소할 수 있고 그림이나 상징으로 가르칠 수 있는 정교한 의식을 제도로 세워 놓으셨다. 거기에는 울긋불긋한 성막이 있었고 거창한 제사장의 예복, 향단, 악기의 연주가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특색있는 의미로 부각되었으나 본체가 나타났을 때 그것들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그들은 구식이 되어 버렸고, 그러한 것들을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에 부합시킨다는 것은 합당치 않는 유년 시절로 퇴보함을 의미한다.

이상에서 우리가 지적했던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성장에도 매우 적절하게 관련된다. 그것은 특히 그들의 발전과정의 제단계에 해당한다. 이것을 올바르게 숙지하면 잘못된 결론에서 빠져 나오기가 쉽다. 한 해가 여러 계절로 나누어지듯이 신자의 생애도 여러 단계로 나누어진다. 자연의 계절에 특징있는 요소가 있듯이 그리스도인의 생애 제단계도 특징을 갖고 있다.

정원이나 과수원이 내는 식물로 보아서 한 해의 계절을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도 그가 맺은 열매나 나타내 보인 은혜로 그것을 짐작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때에 따라 아름답게 되었다". 계절에 어긋나면 꼴볼견이다.

지상의 계절은 수에 있어서 네 개로 나누어지지만 그들 중 세 계절만이 식물과 풍성함을 낸다. 이 비유는 영적으로도 적용된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져 있다. 겨울은 언제인가, 육체가 부활의 소망중 무덤에 들어가서 영원한 봄을 기다리는 때이다.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 보다 분명히 성도의 지상 생활에 세 단계가 있음을 본다.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중에 한 사람이 나가서 땅에 씨를 뿌리는 일에 관해 언급하셨다(물론 이것은 복음전파에 관한 비유이지만).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막 4:28).

즉 성장에는 세 단계가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도 요한도 세 단계, 즉 '아비를', '청년들', '아이들'로 구분하여 기록하였음을 보게 된다.(요일 2:13)

이 땅위에서의 생명이란 즉각적으로 성장하는 법은 없다. 그것은 점차적으로, 서서히 순서에 따라 성장해 나간다. 하나님은 참으로 아담과 하와는 완전한 상태로 지으셨지만, 우리는 중생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상태를 지음받지 못했다.

거듭났지만, 새사람의 모든 속성과 기능들이 밝히 드러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일반적인 재능들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을, 어떤 사람에게는 둘을,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만 주어졌다(마 25:15).

이와같이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 중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보다도 더 많은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같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모든 사람은 신분과 능력과 거룩함의 정도에 있어서 동일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양이지만 어떤 사람은 '어린 양'에 지나지 않는다(요 21:15,16).

어떤 사람은 '강하지만' 다른 사람은 '약하다'(롬 15:1). 어떤 사람은 '어린 아이'에 지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은 '장성한 사람'이다(히 5: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는 '자기의 때에'(시 1:3) 과실을 맺는다.

우리가 지금까지 제시했던 원리에 조금 더 주의한다면, 우리의 연약한 형제. 자매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바 은혜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또 그러한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쉽사리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고 나서 이른 봄에 황금 이삭을 맺지 못한다고 불평한다면 그를 어리석다고 비웃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 아이가 성숙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단련된 신자와 같지 않다고 비난한다면 이는 무지하고 죄된 일일 것이다.

이 말에 대해 모두는 쉽사리 수긍이 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이 사람들 중 얼마나 다른 방향, 즉 자기 자신에게로 치우친 잘못된 생각을 함으로 죄를 지을까 심히 염려하는 바이다. 그들은 이전의 열정과 열심, 뜨거움과 간절함이 지금은 없다고 스스로를 자책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