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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109] 성장의 회복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109] 성장의 회복

En Hakkore 2024. 4. 7. 08:25

이제 우리는 회복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우리 중 어떤 이들에게는 우리가 이런 데까지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는가 세목을 들어 논할 가치가 있겠는가 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만약 그러하다면 확실히 그들은 다음의 사실들을 잊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즉 사단이 많은 죄인들에게 완전히 소망이 없다고 속삭이고 있음으로, 그들은 자비를 얻지 못할 정도로 하나님께 반역하며 완전한 절망의 상태로 떨어지게 된다. 그는 타락한 성도와 함께 동일한 전략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특권과 빛에 대해 죄를 지었음으로 완전히 절망적이라는 확신을 심어 줄 것이다.

죤 번연의 일대기를 읽은 사람들은 이를 잘 알 것이다. 그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그렇게 오랫동안 누워있었음으로 그때 마귀가 그에게 와서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느니라고 믿게 한다. 그가 주님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떠나 있었기 때문에, 회복이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설득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도에게 절망상태에,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 처해 있음을 알리기 위해 성경을 떠나서까지 논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욥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확실히 그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아노라." 혹은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말할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그의 확신이 늘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내 소망을 나무뽑듯 뽑으시고 나를 향하여 진노하시고 원수같이 보시는 구나"(욥 19:10,11). 아무리 그가 칠흙 같은 시련의 어두운 때에 처해 있었다 해도 그의 판단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아삽의 경우를 들어 보자.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으며 내 영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많은 타락한 자들에 대한 묘사는 바로 이러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생각함으로 위로를 받지 않았는가? 결코 그렇지 못하다.

그는 다음과같이 회의하여 물음을 계속하기 빼문이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영히 폐하셨는가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훌을 막으셨는가 하였나이다"(시 77:7-9).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의 연약함 때문이며 성도가 흔히 넘어지기 쉬운 낙망의 실상을 보여준다.

예레미야의 경우를 들어 보자.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당한 자는 내로다 나를 이끌어 흑암에 거하게 하시고... 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 자주 나를 치시도다... 나로 흑암에 거하게 하시고...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사슬을 무겁게 하셨나이다.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케 하셨으며... 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잊어 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애 3:1-18).

이 말은 절망의 심연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이것은 그의 소망이 흔들리고 있음을 말해 줄 뿐 아니라,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이 완전히 멸망하였으며 '주님 앞에서' 버림당했음을 말해 준다. 그는 구원의 어떤 소망도 갖지 못했다. 비참한 상태에서 회복할 가능성도 찾지 못했다.

사랑하는이여, 당신은 오늘날 어떤 그리스도인도 이와 같은 국면에 처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렇게 물어보라.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절망의 심연 가운데 허덕이고 있을 때 왜 그것을 하락하시는가? 이것이 당신의 경우라면 아골 골짜기에도 열린 소망의 문 구원의 가능성이 있음을 듣고 오히려 기뻐해야 할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