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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112] 성장의 회복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112] 성장의 회복

En Hakkore 2024. 4. 7. 08:28

독자는 이제 우리가 말한 말의 의미를 보다 쉽사리 깨달을 줄 믿는다. 즉 영적인 타락에서 회복함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그리고 타락한 상태에서 그 비참함을 지각하는 일과 그것에서 구원받을 필요성을 절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대충 깨닫고 있을 것이다.

죄는 지각을 어둡게 하고 심령을 둔하게 한다. 이것은 불신자에게 적용됨같이, 어느 정도 혹은 극단적인 경우에는 거의 완전히 타락한 신자에게 해당된다. 결코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이것은 큼직한 악명높은 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중에는 결코 이런 죄를 짓지 않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 마음의 지각이 어두워져서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분리되어 '하나님과의 교제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옮겨졌을 뿐이다. 이러한 엄숙한 표현은 타락자의 내적 상태를 묘사해 준다.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키지 않으시면, 그는 자신의 처지를 차라리 나단이 다윗의 처지를 설명해 주었을 때 다윗이 깨달은 것 보다도, 더 깨닫기 힘들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자신의 영적인 처지를 깨닫는다면 특히 그것을 슬퍼한다면, 이보다 더 고마울 것이 없다. 이것은 불신앙의 공언자들의 경우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항상 병약한 자가 건강과 능력이 약화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동묘지에 있는 자는 자신에게 생명이 조금도 없음을 의식하지 못한다. 건장한 체구의 사람을 병실 침대 위에 눕혀 보라.

그는 자신에게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많은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영적인 타락에 대해 별로 문제삼지 않는 주요한 이유는, 그들이 한 번도 영적인 건강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회복에 대해 문제삼는다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떠남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관계를 상실했음에 대하여 문제삼아 말해 준다면, 당신은 그들에게서 롯이 사위들에게 대했을 때의 경우를 재현할 것이다.

롯은 사위들에게 훈계를 했을때 사위들은 그것을 '농담'으로 여겼다. 당신이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해도 그들은 당신이 헛수고 한다고 비웃을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어떤 사랑도 체험해 보지 못한 사람에게 이러한 사랑에로 돌아오라고 아무리 말한다 해도 이는 다 쓸데없는 일일 것이다.

더욱 두려운 사실은 영적인 타락과 회복을 다루는 이 장들이(오늘날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우리 중 여러 이들에게 거의 무의미하고 지겨운 일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것들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그것들로 자신을 충실하게 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고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단지 형식적인 고백을 함으로 만족해 하는 자들은 그것들에 중요성이나 관심을 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현상태에 대해 악하지도 위험하지도 않다고 자위하며 만사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형통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들은 자신들에게 '있어야 할 것'이 있는지 없는지에 관해 세밀히 관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한때 '경건의 능력'을 체험했던 자들도 부주의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행위로 범사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또 그들이 타락에 빠져들지 않으려 애쓰지 않고 거기에서 회복하기를 열망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속된 정욕의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함으로 죄 가운데 죽어 있는 자와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