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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110] 성장의 회복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110] 성장의 회복

En Hakkore 2024. 4. 7. 08:25

오늘날 그렇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찌하여 회복의 가능성에 대해서 그렇게 절감하지 못하는가? 여기에 대한 주요한 이유는 그들이 잘못된 가르침을 배워 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죄성을 가볍게 생각하며, 하나님 율법의 영성과 엄정함을 그저 막연히 깨닫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희미한 개념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의 양심은 마비되었고 자신의 현상태에는 눈이 감겼으며 거기에서 빠져나갈 길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 '내 양은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 는 말씀을 귀가 닳도록 들어 왔기 때문에 타락한 자는 당연히 회복함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조건들에 부합하는 것이 인간 편에서 얼마나 쓰라린 사역인가를 모르고 있다. 그렇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계에서는 '너희 모든 죄를 용서하셨느니라'(골 2:13)란 말씀을 '현재 과거 미래의 모든 죄'란 의미로 가르침을 받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죄용서함을 매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이다.

물론 치명적인 독을 마신 사람들은 회복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경우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 부드러운 양심을 소유한 사람들, 죄를 하나님의 거룩한 빛 속에 비추어 보는 사람들과는 상당히 무관한 것이다. 그들은 잘못을 범했을 때는 살을 에이는 듯한 아픔을 절감하며, 처음 사랑을 떠남으로 타락한다면 회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것이다.

그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나 다름없는 경우에 이르도록 하나님을 떠난 생활을 한다면, 완전히 모든 소망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이 주께 돌아오기를 구한다면 그 경우는 "내가 깊은데서 주께 부르짖나이다"(시 130:1)의 경우가 될 것이다.

심령의 깊은 곳 죄악의 깊은 곳, 통한과 회오의 깊은 곳, 절망과 자포자기의 심연의 깊은 곳에서 부르짖는 것이다. 죤 오웬(John Owen)은 그의 저명한 책 시편 130편 강해에서 이렇게 피력했다.

"이는 하나님과의 많은 교제를 나누었던 성도가 절망의 심연에 들어가서 고통을 받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깊음'을 정의하자면, 이것은 첫째, 성도가 이전에 누렸던 하나님의 사랑을 상실했다는 것이요, 둘째,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불충함이 지극히 큼으로 인한 자책감이요, 세째, 응당 받아야 할 진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원이요, 네째, 현세적인 심판을 두려워한 나머지 부르짓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유명한 청교도는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을 잇는다.

"여기에 부언해야 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아 마지막 날에 유기된 자로 발견되는 때에는 무시무시한 두려움이 임한다는 것이다. 요나는 이렇게 결론짓는 것 같았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3:4), 즉 하나님께서 나를 더 이상 소유하지 않으시므로 나는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된 자라는 뜻이다.

헤만은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인정되고 힘이 없는 사람과 같으며 사망자 중에 던지운 바 되었으며 살륙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다시 기억지 아니하시니 저희는 주의 손에 끊어진 자니이다"(시 88:4,5).

이것은 지옥의 고통이 임하여 엄습할 때가지 영혼에게 부닥쳐 오는 것이다 그때 거기에는 위안도 평강도 안식도 없다. 그때 거기에는 고통뿐이어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목을 매달아 죽기를 택한다. 이것은 성도가 죄를 지을 때 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의 생활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비상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실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증오의 이 참호 속에 그렇게 오랫동안 버려 주시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종종 성도에게라도 마음에 두려움으로 심판과 진노가 임한다."

우리는 이것을 능히 증거로 제시할 수 있다. 우리는 방대한 독서를 통해서 몇몇 예외적인 경우에 성도가 타락하여 고통과 절망과 공포의 깊은 심연 속으로 떨어진 경우를 보았다.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도 보았다.

우리는 여행을 하는 중에 어둠과 고통 속에 완전히 몰락하여 소망도 가지지 못하고 어떤 노력도 거기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목격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하나님의 빛을 만끽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엄숙한 경고를 던져 주고 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자만하다가 사악한 죄 가운데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이다. 죄는 이것이 불신자에게든 신자에게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가증한 일'(렘 44:4)이다.♡

우리가 시험을 가볍게 여기다가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면전에서 떠나게 되는 쓰라린 경우를 맛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불의한 길로 들어가는 '죄의 길이 과연 쓰라리다'는 경우를 몸소 체험할 것이다. 우리의 업적과 특권이 높고 귀하기 때문에 거기에 반해서 넘어짐은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일은 죄가 제 아무리 가증스럽고 괴롭히는 것일지라도 거기에서의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다윗의 경우와 요나의 경우와 베드로의 경우가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어떠한 인간도 영적으로 타락했다고 희망이 없으란 법은 없다. 회복의 올바른 방법만 숙지하고 있다면 말이다. 만일 천국에 이르는 모든 단계가 회복 불가능한 것이라면, 우리 모두에게 화가 미칠 것이며, 우리 모두는 반드시 멸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가 법을 파기함에 대하여 번제하지 않고, 부패를 치유하지 않으면, 항상 은혜 안에서 전진하는 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구원에 이를 자가 없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잘못을 범하는 자에게 일일이 체크하신다면 시편 기자가 말한 대로 주여 누가 주 앞에 서리리까? 라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회복을 힘쓰지 아니한다면 영원한 멸망의 구렁텅이를 향해 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말한 대로 올바른 수단들을 사용함이 요구된다".(J. Owen)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