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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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을 죽이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고 당신이 거기에서 어떠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확인해 보라. 이 일을 이루지 못하는 한 그리스도인의 생애 가운데 성장이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서 내재하는 죄를 제거하지 않으신다. 그는 다만 그들에게서 육신의 정욕을 도모하지 말라고, 그것의 역사를 죽이라고, 그것의 유혹을 부인하라고 요구하신다.♡ 그의 요구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골 3:5)는 것이며,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엡 4:22)는 것이며,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이며, "너희 스스로 우상을 멀리하라"(요일 5:21)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과하신 일생에 걸친 과업이다. 우리가 육..
우리의 본래적인 부패성이 얼마나 많은가를 점점 많이 의식하고, 우리 안에 하나님을 적대하는 요소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이 적대하는 요소를 무시하려는 경향이 얼마나 많은가를 지각함이, 은혜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보증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빛을 우리의 심령 속에 많이 받을수록, 거기에는 더럽고 추잡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지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더욱 가까와지고 그의 형용할 수 없는 정결함에 대해 더욱 많이 알수록 우리 자신의 비천함과 불결함을 깨닫고 그것을 슬퍼할 것이다. 이것은 아래로 낮아지는, 즉 아래로 성장하는 것이며 우리 자신에 대한 중요도를 격감시키는 행위이다. 이것은 속죄하고 깨끗케 하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높이는 행위이며, 죄와 오염을 씻는 샘에 들어..
영적인 성장의 주요한 표적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성숙하는 과정에 있어서 뚜렷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 중 어떤 이는 이 질문을 간단히 생각하며 미리 준비한 답변을 말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적당한 관점에서 그것을 조망해 본다면, 그것에 답변을 내리기 전에 보다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우리가 영적인 성장의 진정한 성격에 대해서 고찰해 본다면, 그것이 나무의 성장과 같이 아래로 위로 안쪽으로 바깥쪽으로 성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단순한 개념화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인의 성장단계를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려 한다면, 이들에게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어린이', '청년', '장년'으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어린이에게 어울리는 것들을 그리스..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그는 이러한 위험천만한 지역에 머물러 있었는가? 그렇지 않다. "그는 남방에서 발행하였다." 그가 행하라는 어떤 지시도 받지 못했음을 유의하자. 그도 그럴 것이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양심이 그렇게 하도록 자극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13:1-4). 그는 세상으로 나가던 길을 다시 돌이켰다. 그는 순례의 길을 되돌아와 다시금 제단 앞에 섰다.♡ 사랑하는이여, 여기서 주의깊게 살펴보라. "거기서 아브람이 여호와의 이름의 이름을 불렀더라." 그가 애굽..
둘째, "아브람은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다"는 기록을 본다(창 12:9). 남방으로 가면 애굽이 있는 곳이다. 가장 의미심장하고 정확하게 하기 위하여는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 보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애굽은 세상을 의미하기 때문에, 애굽으로 돌아간다 함은 논리적으로 벧엘에서 떠나 불안정한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신자의 마음이 구속자와 바른 관계에 놓여 있다면 그는 "오, 주님, 당신은 나의 모든 것이요, 나는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을 찾았나이다"라고 고백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충만히 채워지지 않을 때, 다른 방해되는 요소들이 나타나 역사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단번에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아브람도 그렇지 않았다. 그가 애굽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남방으로 점점 내려갔던 것이다.'! 세째,..
사랑하는이여, 우리 중에 산에 대한 체험을 하는 자들이 왜 이다지도 적으며 설상가상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바로 직시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평지로 내려왔기 때문이며, 공허한 형식주의자들의 수준으로 회칠한 무덤으로 밑에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 결과 세상과 짝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그는 우리를 현세의 이 악한 세상에서(법적으로) 구원해 주셨으며(갈 1:4), 우리의 마음과 생활은 실제적으로 그것에서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집은 높은 곳에 있으며 이 사실로 우리의 삶을 하나하나 설계해 나가야 한다.♡ 아브람과 그의 동료 성도들은 '땅에서는 나그네와 외국인이라 증거하였다' 고 했다(히 11:13). 이것은 그들의 입술로써만 아니라 생활로써..
우리는 이제 우리의 본 주제를 설명해 주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들어보겠다. 아마도 이것을 영적인 타락으로 보는 이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사"(창 12:7)란 말씀을 읽는다. 이것은 또한 이렇게 나타났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이 말은 자의적이거나 자기 만족에 겨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기의 사랑을 보인 것들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함을 말하며 주님을 만족한 분깃으로 삼음을 말한다. 사람은 '주님의 나타내심을' 매일 체험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할 때 우리의 ..
우리는 그러므로 영적인 타락에서 회복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패역한 자의 회복하는 '수단'이 무엇인지, 하나님에게서 떠난 자의 구원받기 위한 '수단'이 무엇인지를 논하고자 한자.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특수한 사건에 주의를 기울이기 이전에 잠언서 28:13의 말씀에 다시 반 번 돌아가고자 한다. 첫째,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리라." 우리의 죄를 숨기는 것은 빛 가운데로 나오는 삶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는 죄를 정직하게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께 나아온다. 죄를 숨긴다는 것은 우리 형제들에게 죄를 감추는 것이며, 우리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잘못을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혼은 형통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 사귐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