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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113] 성장의 회복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113] 성장의 회복

En Hakkore 2024. 4. 7. 08:29

오늘날 기독교계에서는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부패하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차라리 에브라임의 실상을 방불케 한다.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저희가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하는도다."(호 7:9,10)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당신들의 처지는 지금 어떠한가? 당신들은 진정으로 신령한 기쁨과 평강을 누리고 있는가? 이것들이 믿음생활의 불가불리의 열매들이며,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가운데 나타난 것들인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들을 환상적으로 상상적으로 생각만 함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 진수를 찾아 맛봄을 말한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평강, 그리고 주님 안에서와 '충만한 영광' 가운데 누리는 기쁨을 말한다(벧전 1:8).♡

그러한 평강으로 말미암아 시험과 환난 가운데서라도 당신의 마음은 하나님께 머물러 있을 수 있으리라. "여호와를 기뻐함이 당신의 능력"(느 8:10)인가? 여호와를 기뻐함으로써 당신은 기쁨으로 명랑하게 주어진 순종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는 오히려 선을 행할 능력도 갖지 못하는 변덕스러운 감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느 한 때에만 기쁨과 평강을 누렸으나 지금 그렇지 못하다면, 당신의 위치는 영적으로 쇠퇴하고 있는 위치인 것이다. 신령한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마음의 영성과 부드러운 양심의 발로는 또 하나 영적인 건강의 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것들은 지음받은 생활을 말해 주며 모든 신령한 행위에다 활성을 불어 넣어 주는 원리인 것이다. 이것 없이 우리가 의무를 수행한다 함은 단지 '죽이는 일' 밖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입술로만 그에게 가까이 나아간다면, 우리의 예배드리는 모든 것들은, 공허한 외양만을 나타낸 것으로서 그에게는 농담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가까이 함으로 신령한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한다면, 모든 거룩한 의무를 보다 힘있게 수행하기 위해 우리의 은혜를 사용한다면, 이는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게으름, 형식주의, 나태함, 이생의 염려와 부산함, 사단의 유혹이나 방해, 이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인이 세워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이 합당하게 사용되기만 한다면 이 모든 것들에 대하여 능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다면"(사 64:7),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한다면"(단 9:3), 이는 분명코 영적인 건강을 도모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상반된 모든 것들이 당신의 것이라면 당신은 영적인 쇠퇴를 면치 못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전과같이 현재의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면(이것이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이는 희망적인 역사이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당신은 어느 한 순간이라도 만족해서는 안된다. 만약이라도 그렇게 된다면 악화만 가중될 것이다.

사단은 당신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당신은 아직 죄짓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선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고 말한다. 당신은 마땅히 하나님께 돌이켜서 당신의 잘못을 고백해야 함이 선인 줄을 알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다.

타락을 의식함이 회복을 위한 최초의 단계이지만 그 자체만으로써는 아직 부족하다. 그것을 마음 바탕에 새겨 두고 그것의 악함을 감지하고 그것을 슬퍼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면 회개함에 이른다"(고후 7:10). 하지만 이 자체로도 부족하다.

경건한 슬픔 자체가 회개적이든 자연적이든 슬퍼하고 슬퍼하는 자체는 우리의 감정을 유발시키는 것이지 치료 자체는 아닌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277